또 하나의 주목해야할 경기, 리듬체조 신수지

얼마전 육상경기를 보다가 트랙에 찍힌 태극기에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이렇게 생소한 경기에 출전하는 우리나라 선수가 있다니. 그것은 바로 육상 110m 허들에 출전한 이정준이라는 선수였다. 유심히 경기를 봤지만, 역시나 동양권이 따라잡기에는 세계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하지만 한국 신기록을 세운 이정준 선수. 특히나 우리가 잘한다는 양궁, 유도, 역도, 배드민턴, 탁구 경기가 아닌 육상에서 우리나라 선수를 발견했을 때의 반가움은 또 색다른 것이었다.

한 2주간, 혼을 쏙 빼놓았던 올림픽이 어느덧 막을 내릴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가 응원을 할 수 있는 선수들도 몇 남지 않았고... 그 중에서 나는 역시나 생소한 종목에 출전하는 한 선수를 발견했다. 바로 리듬체조에 출전하는 신수지 선수다. 리듬체조는 체조 중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의 인기 종목이지만 역시 동양인에게는 높고 높은 벽을 자랑하는 종목 중에 하나다. 동양인으로써는 유일하게 이번 올림픽 출전권을 따는 28회 세계 리듬체조 선수권 대회서 17위를 차지해, 20위까지 주어지는 출전권을 따냈다고 한다.(중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참가한다)

리듬 체조계의 김연아라며 나름 알려진 선수라고 하지만 나는 전혀 전혀 몰랐던 상황이다. 사실 특별한 관심이 없는 한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중에 아는 선수는 극히 몇 안되지 않던가. (정말 2주전만 해도, 박태환과 장미란 이외에는 그 어떤 선수도 몰랐었던 나다.) 어쨌거나 거의 막바지에 이르는 경기기에 관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신수지 선수의 홈피에 갔더니 나이답게 귀여운 대문인사로 맞이한다. 오늘 시합.. ㅎㄷㄷㄷ(후덜덜) 이라니...

사실, 우리나라의 체조요정이라 하더라도 세계 무대에서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신수지 선수에게 크게 메달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어린나이에 생소한 종목에서 동양인을 대표하여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는 지금의 실력을 갖춘 것만으로도 크게 박수받을 만한 일은 분명하다. 가뜩이나 인기있는 리듬체조에서, 그녀의 환상적인 무대를 기대해본다.   

by 미친공주 | 2008/08/21 14:27 | 잡담 | 트랙백 | 덧글(0)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나이의 눈물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을 생각해 봤을 문제가 "내가 만약 죽는다면..."일 것이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이 인간 너무 잘 먹고 잘 살것 같아 억울해서 못죽겠어요."라는 사람이 있고, "내가 만약 죽는다면, 이 인간 하루도 제대로 못살아낼지도 몰라요."라는 사람도 있고, "내가 죽고나면 남편은 제 갈길 가든말든, 남겨진 내새끼들이 불쌍해서 어떡하나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스트레스가 자식의 죽음도, 부모의 죽음도, 다른 무엇도 아닌 배우자의 사망이라고 하니 그 고통이야 겪지 않아 본 타인으로써는 가타부타 언급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여기, 그 고통을 올림픽 메달로 승화시킨 한 사나이의 이야기가 있다. 베이징올림픽 남자 역도 105kg이상급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독일의 마티아스 슈타이너(Matthias Steiner)라는 역도 선수가 바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사연 없는 선수가 어딨겠냐마는, 이 선수의 사연 역시 눈물겹기는 마찬가지다. 82년생, 거대한 덩치의 이 순박한 사나이는 메달을 받는 단상에 한 장의 사진을 들고 올라섰다. 작년 7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수잔이었다. 원래 오스트리아 출신이었으나 독일 아내를 따라 독일로 귀화한 그는 귀화 3년이 경과하여 간신히 이번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아내의 모국인 독일로 국적을 바꾼 점에 대해 슈타이너는 "내 인생중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라고 밝혔다.

인상 203kg 용상 258kg으로 합계 461kg을 들어올리며 금메달을 목에 건 슈타이너는 "이번 금메달을 획득하는 과정을 아내가 함께 느꼈기를 바란다. 미신을 믿는 성격은 아니지만 오늘 경기 만큼은 아마도 누군가가 나를 도왔기에 금메달 획득이 가능했다. 이 금메달을 아내에게 바친다"라고 말했다. 그가 든 용상 258kg은 본인의 기록보다 무려 12kg 더 나가는 기록이라고 하니, 그의 아내가 함께 했다는 말을 얼마간 믿을 수 있을 정도.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의 눈물은 그 감동을 경기를 보지 못한 나에게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수십번의 눈물을 삼키며 그는 묵묵히 역기를 들었을 것이다. 아내가 생각날 때마다, 손에 못이 박히도록 역기를 들어올렸을 것이다. 죽은 후에도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의 마음에 자리잡은 아내,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같은 여자로써, 하늘에 있는 그의 아내가 얼마간 부러워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여심(女心)인가 보다.

by 미친공주 | 2008/08/20 16:48 | 잡담 | 트랙백 | 덧글(7)

당신은 '어떤' 파란색을 좋아하세요?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 1순위는 엄마가 만들어 준 카스테라였고, 2순위는 옥수수 식빵이었다. 노르스름한 색깔에 알알이 박혀있는 옥수수. 늘상 먹을 때 옥수수를 먼저 쏙쏙 골라먹고 나머지 식빵을 먹곤 했는데 고소하면서도 달작지근한 맛이 낫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기억 때문인지 '옥수수빵 파랑'이라는 색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나름 파란색을 좋아해 미쳐있었는데, 그걸 몰랐다니.

 
1e90ff - dodgerblue : 옥수수빵파랑


dodger에 대한 번역을 옥수수빵이라고 해 놓은 듯 하다. 

corn dodger란 미 남부지역의 딱딱하게 구운 옥수수빵 혹은 옥수수 가루로 만든 푸딩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색깔이 나는 음식일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 옥수수빵 파랑을 자기만의 색깔로 좋아하는 한 만화가가 있다.

타인의 리뷰를 보고 책을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이 책은 제목과 표지만으로 나를 사로잡는다.(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파란 색을 좋아한다고...) 책은 가볍고 곳곳의 카툰은 재미있다. 그냥 끄적끄적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써내려간 느낌. 이 책 덕분에 나는 잊고 있었던 나의 'FAVORITE'을 아주 오랫만에 기억해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은 고1때, 한 선배 때문에 알게 된 코발트 블루라는 이름의 색깔이었다. 어느 날, 한 선배에게서 편지를 주고받고 싶다는 내용의 쪽지가 왔다. 두근두근? 상상은 그만! 그 선배는 여자였다. ^^ 그렇다면 여고였냐구요? 아니다. 공학이었다. 남자들도 우글거리는.

한 고3 선배가 버스안에서 해맑게(당시까지는) 웃고 떠드는 내가 눈에 들어왔나보다. 그 선배는 정갈한 글씨에 당시로써도 놀라운 문장력을 가진 조곤조곤한 목소리의 선배였다. 선배가 졸업하기까지 근 1년여, 우리가 주고받았던 편지는 100통이 넘었을 것이다. 고교시절의 내 감수성을 끌어올려준 선배 때문에 알게 되었던 색깔이 아마도 코발트 블루라는 이름의 색이었다. 이 기억을 근 십몇년 여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어쨌든, 책 한권의 힘이란 이런것이다. 오랜기간 묵혀있던 기억의 장을 열어 먼지쌓인 편지더미 속에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이다. 지금 그 선배, 어디서 뭘 할까...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파란색이 있다.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 중 당신이 좋아하는 파란색은, 어떤 건지요???

by 미친공주 | 2008/08/20 09:58 | 활자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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