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가 본 필리핀 묻지마 관광의 실태 바다 갈증

아침부터 네이버 메인에서 기사 하나를 읽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아졌다. 아빠 없는 코피노 만명… "한국男 나빠요" 라는 기사였는데, 필리핀의 여인들이 버려진 채 한국 남자의 아이를 낳고 그런 아이들이 만명이 넘어간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유독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1년 반여의 필리핀 가이드 경험 탓일 것이다. 

나는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좋아한다. 거의 오염되지 않은 맑은 바다와 무수히 많은 섬, 작열하는 태양이 아름다운 나라이다. 게다가 그곳의 사람들. 눈이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웃음으로 맞이하는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만약, 단순히 여행만을 즐겼더라면 그런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돌아왔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 어두운 단면을 보고 돌아오게 되었다.

내가 가이드로 있었던 2005년은 쓰나미와 테러 등의 여파로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몰리던 관광객들이 급격히 필리핀으로 몰려들던 때였다. 다행히도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신혼부부나 단순한 가족패키지 등을 담당할 일이 많았지만, 남자 가이드들은 몰려드는 골프 관광객을 전담하는 경우가 꽤 많은 편이었다. 가이드를 배정함에 있어서 남자들만의 패키지에 남자 가이드를 배치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저녁 시간 때문이었다.

흔히 관광은 저녁을 먹거나 저녁 이후 전통쇼 관람 등을 하게 되면 끝나기 마련이다. 가이드와 친해진 손님들은 함께 어울려 가벼운 맥주 한 잔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남자들만의 패키지는 당연히 가야 하는 코스가 단란주점이었다. 시내의 몇몇 곳은 한국 관광객을 위한 지정 단란주점이었고, 주인도 한국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이드들은 그런 곳에 손님을 데려가 여자를 골라주는 일을 돕고, 술마시며 즐기고 놀 때까지 기다리다가 호텔이나 여관에 2차로 보내주는 일까지 해야만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셈이었다.

가이드가 부족해 여자가 그런 패키지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는 저녁 시간만 별도로 후배 남자 가이드들이 손님을 돕거나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지난 밤, 어떻게 놀았을지 훤히 짐작이 가는 손님들을 버스에 태우고 그닥 관심없는 관광지로 여기저기 안내하는 일은 썩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보다 충격적인 일도 많았다. 관광지에 도착하면서부터 다시 한국으로 나갈 때까지 필리핀 현지 여자를 애인처럼 같이 데리고 다니며 관광도 하고 숙박도 함께하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에서 남녀가 함께 온 패키지인데, 남자 쪽 대표가 은밀히 가이드에게 말해 여자 동료들이 맛사지를 받을 때 몰래 2차를 즐기러 가는 일도 있었다. 그 이상의 충격적인 목격담도 많았지만 이쯤 하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니.  

어쨌거나,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남자 관광객들은 그 곳에 필리핀 여자들과 즐기려는 목적으로 오곤 했었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현지의 한국인들조차 필리핀 여자들은 그저 유희의 대상이라는 굉장히 비뚤어진 시각을 갖게 되었던 모양이다. 아니, 원래 한국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남아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하찮게 내려다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긴 하다. 그런데 현지에 오자 그 시각은 더 심각해져서 필리핀 사람을 종 부리듯이 부리는 일이 잦았다.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주지 않는 것이다. 가정부도 필리핀 사람, 운전기사도 필리핀 사람이니 그럴 수 밖에. 그러다보니 현지의 여자들과 상주 기간 동안 어느 정도 즐기다가 자기 애를 가졌더라도 나몰라라 외면할 수 있는 것일 게다.

필리핀에서 종종 한국인이 피살되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필리핀 사람들이 흉악하다고 수군댈테지만, 나는 어쩌면 인과응보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가 그들을 종부리듯 대하니, 그들은 우리가 그저 돈으로만 보일 것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상주 기간 동안 필리핀 사람들을 친구나 사람으로써 대하기 보다 한 수 아래 얕보는 시선으로 대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필리핀 사람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친해지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한국인의 시선이 그런 식의 행동을 강요했으니.

일이 끝나고 필리핀의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나는 필리핀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지 못했던 내 자신에 대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베풀어주는 친절과 웃음, 그리고 찬사들은 한국인에게서조차 받지 못했던 그런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지금도, 나는 동남아 사람들을 대할 때의 내 마음이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 이제 한국에도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아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니, 한 세대 정도 더 지나면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들이 줄어들까... 어찌됐건, 더 이상은 코피노라는 이름의 아이들이, 그리고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 남자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덧글

  • 햇비 2008/12/12 13:33 #

    작년이던가요. 올해던가요. 해외로 수학여행 갔던 남학생들이 윤락을 즐겼다는 뉴스에 엄청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요.
  • 미친공주 2008/12/12 13:43 #

    너무 당연시 여겨지는 풍조가 문제겠죠. 유학생들도 장난이 아닙니다. 고작 20대 초중반인데...아효. 말해뭘해요 ㅜ.ㅡ
  • 마법시대 2008/12/12 14:30 #

    올해였을 겁니다. 중국으로 수학여행 갔던 고딩들이 단체로 매춘업소로 갔던게 발각되서 꽤 시끄러웠죠.
    심지어는 감독해야할 선생들도 -_-;
  • 공룡사랑 2008/12/12 14:12 #

    그 옛날이라고 해야할까요.
    은어관광이라고 한국에 은어요리 먹으러 와서 은어처럼 늘씬한 어린애들 관광까지 하던 일본인들.
    엄청나게 욕해놓고, 어린애들을 지켜주진 못하고, 남의 나라에 가서 저러는 사람들이 싫어요.
    아이들도 배운다는 게 참 무서워요.
  • 미친공주 2008/12/12 16:12 #

    헉.. 은어관광이라는 것이 있었군요..-ㅁ- 충격입니다.
  • exdes 2008/12/12 14:42 # 삭제

    -_- 다 변해야해요,,,
    사람들도 바꾸고.. 인식도 바꾸고...
    뭔가 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왜 서태지도 .. 그날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 시대유감.. ㅎ
  • 애플,, 2008/12/12 15:11 # 삭제

    나이 지긋한 선배한분이 지금 필리핀에서 22살짜리 아가씨랑 같이 산다고자랑하더군요...
  • 팬티팔이녀 2008/12/12 16:45 #

    저 기사보고 욕하는 한국여자들도 학창시절때 필리핀계 한국인이랑 짝궁하려면 싫다고 ㅈㄹ했었을거라는데에 올인.. 바깥의 차별문제보다 심각한게 우리나라안의 차별문제일텐데..
  • addict 2008/12/12 17:44 #

    정말 이런 저런 류의 일들 덕분에
    한국인들이 많은 곳이나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곳은
    어디든지 시간이 가면 혐한감정이 높아지더라구요..

    전 중국에서 공부했었는데 주위의 중국사람들을 좀 더 친구답게 대하지 못했던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 maxi 2008/12/12 20:24 #

    역시 페이퍼가 트랙백을..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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