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일하는 싱글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활자이야기

이제 일주일이면 나는 서른이 된다. 어린 사람들이 봤을 땐 '어이구~ 그렇게나 나이를 먹었어?'하고 나이드신 분들이 봤을 땐 '뭐~ 한참때구만 그래!' 할 수 있는 나이. 어떻든 서른에는 서른 만의 언어가 있는 법이다.

핑크색을 좋아하진 않지만, 핑크색의 표지는 눈에 확 띄었다. 핑크색이란 태어날 때부터 여자의 색이라고 결정되어진 색깔이다. 아기 옷을 살 때, 딸이면 핑크 아들이면 하늘색을 선택하곤 한다. 단지 파란색이 이쁘다는 이유로 파란색 옷을 들고가면 딸인지 몰라서 사왔다고 눈총을 받기 십상인 색깔. 

처음 책을 봤을 때는 아마 조금 세련되게 쓰여진 명화 해설서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세련되게 쓰여진 서른살 일하는 싱글녀 해설서였다. 이제 서른이 될 나의 해설서였다. 그녀가 쏟아내는 말들에 마치 친구와 수다라도 떨듯이 '맞아맞아! 정말 그래!'하며 맞장구를 치고 싶었던 책이었다. 게다가 이 책에 등장하는 명화들은 뻔하지 않았다. 그림에 무지해서 그렇지만 뻔하지 않은 그림들이 많았고, 자주 봤던 그림들도 색다른 해석으로 신선했다.

이건 웬만한 사람은 다 알법한 고흐의 자화상이다. 대부분 고흐에 대해서는 그의 정신분열의 세계 등등의 해설을 이야기 하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그러지 않았다. 저자는 고흐의 자화상에서 장남 컴플렉스를 느꼈다고 한다. 아마 저자도 장녀였기 때문일 것이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나도 장녀인데, 딸이기 전에 집에서의 역할은 듬직한 아들 역할이었다. 부모님은 동생들은 미더워 했지만, 나는 항상 믿어주셨고 나 또한 집에 의지하는 일 없이 일찌감치 독립적인 자식으로 성장했다. 동생과 부모님 사이의 미묘한 장녀 역할과 희생에 대해서 쓴 저자의 글이 그래서 더 공감이 갔을 것이다.  

무식하게도 처음 본 그림이었지만, 가장 마음에 든 그림이 이것이었다. <타마라 드 렘피카>의 '녹색 부가티를 탄 자화상'. 저자는 이 그림과 함께 다섯번째에 간신히 합격했다는 운전면허에 관한 에피소드를 쏟아냈다. 이 여성 화가는 당시 거의 없었던 여자 운전자였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멋진 차 속에 담은 자화상을 그려냈다고 한다. 왜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냐면, 나도 운전면허가 없기 때문이었다.

서른에 면허조차 없는 여자라, 저자의 말대로 운전을 하는 사람에게 의존적인 삶일 수밖에 없다.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해지지 않는 한은 말이다. 번지점프도, 스쿠버다이빙도 서슴치 않고 하는 내가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이유는 '기계치'이기 때문이다. 두렵고 무서운 생각보다 일단 차를 조작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싫다. 언젠가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따게 될 날이 올까? 그 전에 나는 자동으로 운전이 되는 차가 발명되기를 기다리는 편이 빠를지도 모른다. 별 수 없다. 그저 부지런히 살 밖에.

얀 베르메르의 밀크 메이드. 이것도 역시 잘 알려진 그림이다. 대부분 이 그림은 화가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엄마를 찾았다. 서른살에 직장에 다니는 사람과 결혼해서 집에 있는 사람은 미묘한 감정의 선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은 자식을 낳으면 직장맘이라는 이름이 생기며 대립이 가속화 된다. 저자 역시 결혼해서 집에 있는 친구들의 시댁 뒷치닥거리, 자식 뒷치닥거리에 아무때고 약속을 펑크내는 전업주부 삶에 이따금 짜증을 내곤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전업주부는 내 엄마가 아니던가.   

책을 읽는 내내 마치 평범한 30대 일하는 싱글녀의 삶을 물 흐르듯 세련되게, 적절한 그림과 더불어 풀어낸 저자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게다가 기자라는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녀에게 존재하는 감수성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제 막 29살이 된 여동생에게도, 서른이 될 친구녀석들에게도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나의, 너의,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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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inAqua 2008/12/24 12:04 #

    신선하면서도 여성주의적인 해석이네요 'ㅁ'
    음, 이제 23살이 되긴 하지만.. 저도 면허 없어요 =ㅂ=;; 이유는 좌우구분을 잘 못해서 _no 랍니다. 앞으로 과연 면허를 딸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데, 주변에서 면허 없으면, 남편(남자들은 거의 운전면허가 있으니) 없을 때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해서 꼭 따라고 하더라고요. '운전을 하는 사람에게 의존적인 삶'이라는 문구에서 딱 떠올랐습니다.
  • 미친공주 2008/12/24 13:07 #

    인상적인 문구였죠. -ㅁ-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구요. 저자는 면허를 따고나서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는데.. 저는 할 수 있을랑가 모르겠네요 ㅎㅎ
  • cherry 2008/12/24 18:42 #

    도판이 많은 괜찮은 책을 좋아하는데, 눈길이 가는군요. 그리고 운전에 관한 저자의 해석(면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운전을 하는 것)에는 상당 부분 공감이 갑니다. 운전뿐만은 아니겠지요. 요리, 망치질, 간단한 배관 등의 기술은 독립생활에 매우 필수적인 요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 미친공주 2008/12/26 09:15 #

    그림을 좋아하신다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책을 듯 합니다. 좋은 그림이 많거든요 ^^
  • 2008/12/26 19:10 # 삭제

    그림은 고흐 자화상 하나만 알겠네여
    ㅎㅎㅎ 전 미술은 영 꽝이거든여
    서른에 일하는 싱글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궁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울거 같네여
    불황인 요즘 크리스 마스때 까진 일하는 사람두 있지만 ㅠㅠ
    신정두 쉬기 힘들듯 ㅠㅠ
    다른 복은 엄어두 일복은 만아요 ㅋㅋㅋ
    돈두 마니 버는것두 아니면서 ㅎㅎㅎ
    오늘두 마무리 잘하시구요
    요즘 마니 추워요 감기 조심하세요
  • 미친공주 2008/12/26 22:05 #

    요즘은 일복; 많은 게 최고라던데요. ^^ 그래도 새해는 희망찼음 해요. 댓글 감사합니다^^
  • 이규화 2008/12/27 02:55 # 삭제

    애안낳는여자는 군대가야지
  • 김희원 2008/12/27 10:19 # 삭제

    저도 이책 커버에 반해서 사게 됏어요 저도 에곤쉴레 그 물흐르는듯한 드로잉이 좋아서
    근데 읽으니까 그림 해설인줄 알았더니..
    작가의 삶이 배여있는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들었네요 오히려.ㅋㅋ
    작가는 알파걸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듯 했지만 난 정말 일반 회사원이라는데서 약간 자괴감이 들긴 했는데 읽다보니..알파걸이든 아니든 외로움은 다 느끼고 있었던거구나..
    나만 집에 돌아오면 그 허전함과 공허함을 느끼는거 아니었구나...나만 티비보고 같이 대화하는거 아니었구나...실실 웃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는 정말 소설보다 더 흥미 진진했어요
    마친 곽기자님이 내가 아는 사람이 된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 정도로 공감대가 형성됐구요
    혼자 사는 싱글녀에 장녀 컴플렉스 가지신 분 읽어보세요 완전 강추에요!~ㅋㅋ
  • 미친공주 2008/12/28 10:57 #

    ㅎㅎ 그쵸. 해설서는 아니지만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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