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시작된다는 소식에 볼까, 말까를 한동안 망설였었다. 보자니 뻔히 실망할 것 같고, 그렇다고 보지 않기엔 원작에 대한 향수가 강했달까? 내가 이런식으로 원작 만화 때문에 드라마에 빠져들게 되는 경우는 최근들어 점점 늘고 있다. 그만큼 만화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리겠지만. 어쨌거나 많은 소녀(?)들의 기억 속에 '꽃보다 남자'는 대단한 만화책이긴 했었다.

중학교 무렵이었던가. 이 책을 처음 '오렌지 보이'라는 이름으로 접했다. 그땐 몰랐지만 아마도 해적판이었던 모양이다. '황보명, 정유나'라는 촌스러운 주인공 이름에도 불구하고 금새 빠져들었던 만화. 지금으로썬 왜 오렌지 보이일까 하는 청소년도 있을텐데, 당시 강남에 부유한 젊은이들을 통칭 '오렌지 족'이라고 일컬었었다. 오렌지 족이라니, 지금 생각하니 그 단어가 왜 이리 웃긴지... 이후 정식 수입판 '꽃보다 남자'가 다시 들어왔다. 어떻게 하긴 뭐, 처음부터 다시 읽었지...;; 이걸 읽으면서 실제로 이 만화를 드라마나 영화로 보게 되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대만판이 나오기 시작하자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다. 솔직히 꽃보다 남자의 핵심은 캐스팅이다. 초 부유층 꽃미남을 대변하는 미소년들이 등장해야 하는데 해외판은 정서상 안맞아서인지 느끼했다. 눈에 자꾸 들어오지 않으니 드라마의 몰입도 안되고.. 뭐 등등. 한마디로 요약하면 실망했다는 것이었고 그 기분은 한국판 꽃보다 남자에게도 선입견을 갖게 만들었다. 시대를 한참 지나 뒤늦게 왜 이것을 드라마화 했는지도 의문이 들었고. 뭐, 사실 그간 많은 블로거들이 꽃보다 남자를 캐스팅하면 어떤 배우가 어울릴까 등등의 포스트를 여러번 쓰기도 했었지만..

그런데 한국판 꽃보다 남자, 생각보다 캐스팅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여주인공은 구혜선씨 보다는 남상미씨가 어떨까, 남자 주인공은 또 누구면 어땠을까라는 식의 상상은 해봤지만 딱 봤을때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야말로 유치찬란했다. 정말 만화를 보는 듯한. 여고생 삼총사가 주인공 잔디를 괴롭히려고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닭살이 쫙쫙 돋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나는 끝까지 채널을 돌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단 첫회에서 이 정도의 흡입력이라면 가능성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타겟층이 확실한 드라마이다. 한동안 티비앞을 떠나있다가 베토벤 바이러스로 간신히 티비 앞에 앉기 시작한 10~30대, 특별히 여성들에게 선호될만한. 이제 스토리를 어떻게 끌어나가느냐가 관건인데, 나는 차라리 이 드라마가 유치찬란해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드라마의 모든 설정 중에 현실에서 있음직한 것은 거의 없다. (중고교에서 왕따가 이루어지는 장면같은 초기 장면은 그나마 가능할까?) 그 이후에는 신데렐라 스토리 뭐, 그런 식이다.
그럴거면 확실하게 애틋한 멜로라인과 밀고 당기기, 그리고 유치찬란한 웃음들로 포장하는 것이 좋다. 차라리 그렇다면 연기가 어색할지라도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할 지라도 만화적 상상력 만으로도 용서가 될 것이다. 심각해질 필요없이, 진지하고 무거운 멜로라인은 한동안 많이 보아왔으니까. 제 2의 '궁'처럼 말이다. 이 드라마가 앞으로도 가볍고 유쾌하고 통통튀는 웃음을 선사하는 드라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간만에 원작만큼 재미있는 드라마가 탄생하길 기원한다.





덧글
제제 2009/01/06 14:30 # 답글
유치찬란해서 눈을 뗄 수 없게..에 공감합니다.^^; 세상사는 것에 눈 좀 돌려보는 것의 일환으로 첫회를 봤는데,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이거 아무래도 내내 욕하면서 (별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끝까지 보겠구만...'였답니다.. 하하하하미친공주 2009/01/06 14:31 #
핫핫.. 그렇죠?;;시진이 2009/01/06 23:50 # 답글
맞아요, 그 현실과는 정말 동떨어진, 말도 안되는 억지 같은 유치한 설정이, 핵심포인트 같아요 이 드라마의. 하하하 이 드라마의 원래 이야기는 어차피 '만화'인데요 뭐. 저한테도 꽤 많이, 흥미진진했답니다 어제 오늘^^ (아아 오늘..!!! 하하하하하하하 남자주인공은 정말 씽크로 100%라고 생각되는..하하)미친공주 2009/01/07 09:10 #
스토리의 전개를 보자하니 원작에 충실하기로 작정한 듯 보였어요. 상황상황이... ㅋ 화요일것도 흥미롭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