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년 여름,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조조할인

아직도 기억이 난다. 2004년 여름, 회사의 지인을 통해 박찬욱 감독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박찬욱 감독은 2003년 겨울에 올드보이를 개봉하고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아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그 전작인 '복수는 나의 것'도 워낙 강렬한 영화였었기 때문에 실제로 박찬욱 감독은 어마어마한 카리스마가 있고, 성격도 매우 강한 사람이 아닐까 지레 상상하며 만났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그는 올드보이 같은 강한 영화를 만들만한 사람 같아보이지 않았다. 소탈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랄까. 본인 스스로도 본인이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당시 그는 칸 영화제 수상때문에 앞으로의 작품에 부담을 갖지 않겠냐고 했을때도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했는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보고 나니 그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었다.

2004년 여름, 그는 벌써 하고 싶다는 작품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친절한 금자씨박쥐에 대해. 2009년에야 개봉을 했지만, 이미 '박쥐'에 대해서는 흡혈귀에 대한 영화고 주연이 송강호(그가 최고로 꼽았던 배우 둘 중 하나. 나머지 하나는 최민식씨 ^^)라는 것까지도 결정이 되어있었던 상태였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그가 오래전부터 원작인 '테레즈 라켕'을 보고 영화로 반드시 만드리라 별러왔었던 작품인 것 같다. (그렇지만 원작은 흡혈귀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흡혈귀 이야기가 아닌 원작에서 어떻게 그 내용을 상상했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당시 박찬욱 감독은 이야기 했었다. 자신이 만들고 있는 영화들이 복수 시리즈라고는 하지만, 단순한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Moral Dilemma"에 대한 이야기라고. 듣고보니, 일상적인 인간으로써 옳고 그르다고 판단되는 것이 처해진 상황에 따라 어떻게 처참히 무너질 수 있는지, 또 인간이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 그것을 지키기 위해 바둥거리고 있는지를 매우 불편하게 보여주는 감독이 바로 박찬욱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영화 박쥐에서도 매우 강하게 드러나 있다. 불친절하고, 불편하고, 가혹한 이야기. 인간이기 때문에 보면서 불편한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플롯과 세세한 디테일에서 얻게 되는 잔인함들. 그런 것들이 매번 영화를 더해가면서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의 영화들이 매우 친절했다면,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할테니 알아서 들으라는 듯. 그래서 그의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애초에 다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사람.

그를 두번째로 만났던 것은 2006년 가을 무렵 토요일 오전, 헤이리 마을에서였다. 그때쯤이면 친절한 금자씨를 끝내고 신나게 박쥐를 구상할 때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피가 난무한 영화의 내용과는 상반되는 모습으로 그는 너무나도 여유롭고 평화롭게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의 그런 삶이 웬지 접근하고 싶지 않을만치 자유로워보였다. (뭐, 인사를 해도 알아보지 못했을테지만;;)

참 재능도 있지만, 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찬욱, 그는 하고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이 시대의 몇 안되는 감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