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잔치일 뿐인 친구 결혼식, 씁쓸해 연애이야기

요즘 줄곧 자식이 부모의 소유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 정서에 반하고 싶은 일들이 계속 주변에서 발생한다. 아마도 그것이 내 나이 탓일 것이다. 서른이면 부모에게서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할 나이이고, 부모의 품을 벗어나려는 자식과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부모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기싸움이 벌어지는 나이이니까. 게다가 그 정점을 찍는 것이 결혼식이다.

결혼식에 몇 번 참석하다보면 호불호 시간대가 생긴다. 물론 당사자들은 예식장 스케줄에 맞추느라 어쩔 수 없이 정하는 시간이겠지만 참석자의 눈은 또 다르다. 만일 토요일 11시, 12시처럼 조금 이른 시간이라면 금요일 저녁부터 반납을 해야 한다. 솔직히 금요일날 술을 마시다가 토요일날 일어나지 못해 가지 못했던 결혼식들이 좀 있었다. 또 식사시간을 어설프게 비켜나가는 예식이라든지, 일요일 저녁의 예식도 썩 좋지는 않다. 하지만 최악의 사태는 지방에서 치러지는 (거리가 먼) 예식이다.

이번 주말 나는 부산에 내려가야 한다. 다름아닌 친구 결혼식 때문이다. 친구가 결혼식을 부산에서 올린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모든 친구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물론 친한 친구이기에 축하하는 마음이 앞서긴 하지만, 내심 직장인에게 황금같은 주말을 부산 왕복으로 날려야 한다는 것에 난색을 표하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부산이 고향이라는 오빠에게 살짝 원망이 들기도 했고, 굳이 남자쪽을 따라 부산에서 해야하는 건가 하는 비딱한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예식은 오후 3시인데 버스는 8시에 강남에서 출발이다. 친구들은 모두 강북 거주자 혹은 일산, 인천 등지에 거주하고 있어 버스는 당연히 포기. 사비를 들여서 KTX나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게다가 내려가는 김에 그냥 올라오기 허무해서 방도 하나 잡았다. 축의금에, 차비에, 방값까지... 이쯤 되면 다들 허리가 휘청거린다.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에 친구에게 슬쩍 눈치를 줬더니, 친구는 한숨부터 내쉰다. 알고보니 친구의 부모님의 고향도 부산이다. 양가 부모님이 돌린 초댓장만 몇백장은 되나보다. 그런데 정작 친구와 오빠의 직장 동료는 단 한사람도 오지 못한다고 한다. 내려가는 친구들도 우리 몇몇이 고작이다. 그것 뿐일까.

일반적으로 드레스부터 화장, 웨딩촬영 모든 것이 풀패키지로 제공되는 요즘 세태와 달리 예식장에서 제공하는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결혼 준비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웨딩 전문샵과 예식장에서 제공되는 드레스는 차이가 꽤 난다. 화장도 마찬가지. 사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라고들 한다.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공주가 되어 보는 날인데, 그냥 다 포기했다는 친구의 말에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당연히 결혼을 하는 당사자여야 할 것이다. 남녀가 만나 한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날.. 그런 두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친구나 직장동료 등 가까운 주변 사람이 아닐까? 그렇지만 예식장을 가득 채우는 것은 부모님이 그동안 축의금을 뿌려왔던 수 많은 손님들과 사돈의 팔촌이라는 얼굴 모르는 친척들이 대부분이다.  

오래전의 결혼식들은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잔치였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가능했다. 또, 자식들의 사회 생활도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변했고, 정서 또한 바뀌었는데 형식만이 그대로 남아있다. 물론, 장성한 자식 시집 장가를 보내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긴 할테지만.. (물론 뿌린 돈을 악착같이 다 받아내겠다는 결심을 하시는 부모님도 적지 않다) 

그러는 동안 정작 결혼식의 주인공들은 잊혀진다. 그런 결혼식 하기 싫다고 외치던 친구들도 부모님을 바라보면 또 마음이 약해지는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그냥 그렇게 예식을 올리고 만다. 철없던 시절, 결혼 생활이나 결혼에 대해 아름다운 상상을 나눴었던 친구들이 하나, 둘 현실 속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이 씁쓸한 이유다.


덧글

  • TokaNG 2009/11/06 14:05 #

    음.. 상당부분 공감이 가기도 하는 글이네요.
    확실히 친구 결혼식을 가도 정작 친구들보다는 모르는 쌩뚱맞은 사람들이 더 많긴 하지요.;;
    서울에서 거주하는 친구가 본가가 부산이라고 부산에서 결혼하는 모습은 좀 웃기기도 했습니다.
    지인들은 모두 서울에 있는데..
    부모님께 보여드리기 위한 결혼식만은 아닐 텐데 말이죠.

    역시 많은 지인들의 축복속에서 이뤄줘야 할 결혼식이 생면부지의 부모님 지인들의 허례 가득한 축하속에 이루어지는 것은 씁쓸하긴 합니다.

    하지만 결혼이란게 또 집안끼리의 경사다 보니 자신의 지인들만 챙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역시 어려운 사항이네요.
  • 미친공주 2009/11/06 14:14 #

    ^^;; 그러니까요. 친구 직장동료들도 하나도 못온다는 말에 허걱 했어요. 쩝..
    부모님들이 욕심을 조금만 버리시면 좋을텐데... 너무 큰 바램인가요?^^
  • 미야 2009/11/06 15:38 #

    저번주 일요일에 반대의 경우를 갔다왔지요 ㅇ<-<...
    신부는 부산, 신랑은 서울인. 그래도 부산은 교통편 때문에 그나마 낫죠 ㅠㅠ
  • 미친공주 2009/11/06 16:10 #

    ^^;;;그러게요 ㅎ
  • 솔직녀 2009/11/06 15:49 #

    결혼식의 주인공이 신랑 신부가 되려면 적어도 부모님에게서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할 수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부모님 도움받아 결혼하는 입장에서야 할 말 없죠.
  • 미친공주 2009/11/06 16:12 #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결혼식만 놓고 보면 초대하는 사람이 적은 경우 신랑신부 둘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죠. 뭐 이래저래 요즘 세태에 부모님 도움 안받겠다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ㅎ
  • 매드캣 2009/11/06 16:10 #

    저도 금년 12월에 결혼하는데 그냥 애인이 하고 싶다는대로 다 맞춰줬습니다. 식장, 드레스, 한복, 촬영 모든걸... 실은 전 수원에고 애인은 서울인데 상암에서 하겠다는거 제가 부모님 설득해서 강남까지 어떻게 양보시켜드리고 좀 더 밑작업해서 결국 상암에서 결혼하게 됐지요. 다행히 부모님께서 본인들의 이익보다는 자식들이 원하는걸 해주는게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직접 주례하시고 축가 독창하신다는건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었지요.OTL
  • 미친공주 2009/11/06 16:11 #

    하하.. 멋지신데요. 웬지 부럽습니다. 잊지못할 결혼식이 될 것 같아요 ^^
  • 라비안로즈 2009/11/06 17:33 #

    저는 지인이 부산,설 양분되어있죠.. 근데 전 결혼을 부산에서 하고싶어요. 어머니가 저에게 어렸을때부터 쇄뇌시킨 넌 장녀니까 부산의 본교회에서 교회결혼식 올려야되~ 라는 것에 사로잡혀 있는걸까요?
    그리고 부모님측의 사람들이면 허례이고 젊은사람들이면 진실이라는 댓글은 좀 보기 안좋네요.
  • 한양댁 2009/11/06 19:54 #

    결혼식뿐 아니라 결혼 자체가 부모님 입김 아래지요.
    솔직히 현실이 그렇습니다.
    부모님 입김에서 자유로운 부부는 본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 soylatte 2009/11/07 09:14 #

    부모님 입김에서 자유로운 부부 본 경험 - 전 저희부부가 첨입니다. -.-;;;;;; 일단 남자쪽에선 입김이랄 게 거의 없었던 게 컸지요(결혼하고 통보하는 분위기가 실제로 가능. 근데 이건 남자의 가치관이나 독립정도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그리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부모가 그 정도로 신뢰해주는 것 같았어요. 네 아내니까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골랐겠니, 좋은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니 축하한다- 라고 축복의 분위기;; 물론 그렇기에 우리나라처럼 물질적으로 팍팍 밀어주시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부모님 입김이 생기기때문에 아무것도 받고싶지 않다고 신랑도 얘길 하더라구요. 더불어 저희집에서 뭐 해주시는 것도 받기 싫대요.).. 하지만 저는 마음 속 깊은곳까지 100% 자유로울 순 없었어요. 아마 경제적 독립을 못하고 있다보니 정신적인 독립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인 듯 해요. 대부분의 우리나라 자녀들은 결혼을 통해 비로소 처음으로 부모집에서 독립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결혼 전까지는(그리고 결혼 후에도 상당히)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있으니까 더욱 그런거겠죠. 저였어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해요.
  • 한양댁 2009/11/08 19:28 #

    저희 부부는 경제 문제쪽으로는 완벽하게 독립한 상태였고, 지금도 그런데도...안 되더군요. 씁쓸하지만....
  • 타누키 2009/11/07 11:40 #

    친구녀석은 두번하더군요. 그렇게 지방은 아니었는데 친구들이 대부분 서울에 있다보니 부모님 지역(신부지역)에서 한번 서울에서 또한번 서울에선 전통혼례로 했는데 두번 다르게 하니 또 재미있는 것(과연 당사자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같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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