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 아쉬운 '2012' 조조할인

종말을 다룬 영화가 언제나 흥미진진한 이유는 대부분의 인간 뇌리 구석에는 '언젠가 이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그 시기가 내 살아 생전에 올 것인가? 내 후대에 올 것인가? 그러면 어떤 형태로 올 것인가? 사실 이런 의문들은 두려움보다는 단순한 호기심에 가깝다. 다들 그리 가까운 시일 내에 지구가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가까운 시일 내에 지구가 망한다고 믿는다면 인간들의 삶의 방식은 꽤나 달라질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구의 멸망의 날이라는 1999년도 지나왔고 오지 않을 것 같았던 21세기를 살고 있다. 그 와중에 2012년이 그나마 예측된 가장 가까운 종말의 날이라고 한다. 두려운가? 궁금한가? 코웃음 치는가?

종말의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그 방법은 여러모로 예측해 볼 수 있다. 외계인 침략설, 전쟁설, 그리고 교만했던 인간들을 비웃듯 다가오는 어마어마한 자연 재해설이다. 자연 재해설에 대해 급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영화가 바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투모로우'라는 영화였다. 영화를 볼 당시 더운 여름날이었는데도 극장에서 온갖 오한에 시달리게 만들었던 영화였고, 재방송을 몇번이나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였다. 그 감독의 신작 재앙 영화라니 끌리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 스포일러 거의 없습니다~

2012. 역시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환상적인 화면에 비명을 질러대야 했고, 손에 땀을 쥐며 오도방정을 떨었다. 그런데 그 리얼한 현실앞에서 나는 차라리 저렇게 해서까지 살아남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거나 돈이 아깝지 않았던 영화이긴 했고, 봐야한다면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이긴 했다.

그렇지만 그 자연 재해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재난 영화의 공식들은 그닥 달갑지는 않다. 그 재난 영화의 몇가지 공식이란,

첫째, 가족이 최고라는 것이다. 가족애를 강조하기 위해 늘 가족에 무심했던 가장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서 수많이 이들이 희생당한다. 그래도 괜찮다. 최소한 인류의 한 가족이 행복을 찾았고,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니까... 특히 가족의 행복을 가로막는 엑스 와이프의 남친 같은 사람들은 죽어 마땅하다.

둘째, 영웅처럼 희생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화면 내내 수많은 사람을 개미처럼 쉽사리 죽여 놓고는 최후의 순간에 최소한의 몇 명을 살리기 위해 영웅처럼 죽는 사람을 꼭 내세운다. 그의 숭고한 죽음이 살아남은 인류를 더욱 가치있게 만든다고 믿는 모양이다. 

셋째, 그릇된 지도자와 위대한 과학자의 충돌이 있다. 늘 지도자들은 정치를 하려고 할 뿐, 양심 따위는 갖다 버린지 오래이다. 가장 비딱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반대로 재앙의 진실을 가장 잘 아는 과학자는 양심 때문에 늘 고뇌한다. 영화내내 그들은 충돌하며, 꼭 지도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다. 

가족애를 강조해야 하고, 희생을 하는 영웅이 등장해야 하며, 인류의 양심에 대한 반성도 해야 하니 마지막 30분은 불필요하리 만치 지지부진해지고 만다. 단순히 비주얼이 강조된 재난 영화로 끝맺기에는 조금 심심하다 싶어 양념을 자꾸 더하다 보니 본래의 주재료 맛이 사라지는 꼴이다. 가족의 사랑 운운하기에는 그들이 살아남기까지의 희생자들의 죽음이 허무하다. 또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재난의 시기보다 더 건조하고 살벌하기까지 하다.

어쨌거나 나는, 재난 영화들이 꼭 가족의 사랑을 강조하거나 영웅의 희생을 내세우며 끝맺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그저 화려한 천재지변 만으로도 이미 오싹해서 삶과 죽음, 종말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되니까.  (어짜피 이 영화의 유통기한도 2012년까지인데 뭘) 아니, 이 영화를 보고나면 그보다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덧글

  • TokaNG 2009/11/16 16:57 #

    음..
    도시가 무너지고 지구가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눈으로 보는 것은 확실히 즐거웠지만 내용적인 면에선 대략 난감이었습니다.=_=;
    역시나 민폐쟁이 주인공을 내세운 그저 뻔한 가족애를 그린 영화라..
    인류의 운명을 걸고서 겨우 가족애따위밖에 보여주지 못하다니..ㅜㅡ
    후반에 살짝 위대한 인간애를 보여주는 듯 했지만 그 묘사가 너무나 어설퍼서 되려 진행에 방해만 되었던..

    도시가 무너지는 장면 말고는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ㅜㅡ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극장에서 볼 가치는 충분!!
  • 미친공주 2009/11/16 17:06 #

    딱 정리 잘하셨어요 ㅋ 그대롭니다 ^^
  • 니코 2009/11/16 17:01 #

    글을 읽어 보니 해피엔딩이군요...^^
    지구의 인간이 다 죽어도 주인공만 살면 해피엔딩......ㅠ.ㅠ
  • 미친공주 2009/11/16 17:06 #

    ^^;; 그니까요 ㅋ
  • 오리지날U 2009/11/17 19:04 #

    우리는 그냥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10억유로를 준비하느냐, 아님 전동드라이버를 구비하느냐.
  • 미친공주 2009/11/18 10:09 #

    ㅋㅋㅋㅋ 비행조종이나 배워놀까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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