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친구의 연락, 피하고 싶은 이유 잡담

12월 31일 밤 12시. 자정을 넘기자마자 새해 문자가 쇄도했다. 물론 매 해가 갈수록 문자의 양은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땡하면서 오는 의례적인 문자들이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오는 안부 문자에만 답을 하는 전형적인 귀차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문자들에 답을 하고 있는데 뜬금없는 문자 한 통을 발견했다.

"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희망찬 2010년 맞이하세요~~"

새해 안부 문자인데 뭐가 이상하냐 하겠지만... 그렇다. 나는 이 언니라고 부르는 아이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핸드폰을 몇번 잃어버리긴 했지만, 최근 3~ 4년 안에는 잃어버린 적이 없는 핸드폰에 누구인지 입력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상당히 오랫만에 온 연락이라는 뜻이다. 잘못 온 문자일 수도 있지만 왠지 찝찝하여 그냥 삭제하지 않고 놔두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또 다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언니~ 잘 지내죠? 저 1월 0일 12시에 00 호텔에서 결혼해요. 꼭 와서 축하해 주세요~"

아하! 확인을 해보니 그 새해 안부 문자와 동일한 번호다. 역시 나를 정초부터 애타게 찾았던 이 아이의 목적은 결혼이었다. 누군지조차 알 수 없는 후배의 결혼 소식을 듣자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면서도 괘씸한 기분이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아, 그랬다. 이와 비슷한 기분을 예전에 한번 또 느꼈던 적이 있다. 

3~ 4년 전이던가. 정말 오랫만에 한 친구가 보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20대 초반 배낭 여행을 하다 외국에서 만났던 친구인데, 갔다와서도 한두번 만났다가 군대다 뭐다해서 점차 연락이 끊긴 케이스였다. 그래도 미니 홈피로 서로간의 아슬아슬한 생사 확인만 가능한 상태였는데, 이렇게 먼저 나를 찾으니 반갑기 짝이 없었다.

간만의 만남이라 나름 기쁜 마음에 냉큼 약속을 잡았는데, 친구가 정장을 쏙 빼입은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서로 무슨 일을 하냐고 생사를 확인하는데 00생명 FC로 일하고 있단다. 응? FC? 그게 뭐하는 거냐고 묻자, 개인 재무 상담 뭐 그런 거란다.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 친구가 나를 찾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 때부터 나도 보이지 않는 벽을 치기 시작한다. 나의 재정 상태는 퍼펙트하며 미래에 한낱 고민거리도 없다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안 살거니 남들 같은 인생 계획은 필요없다고 떠들어댔다. 그 친구는 어째 당황한 듯 싶었다. 아마도 보험 판매 초짜였을 그 친구는 배운 레파토리에 나 같은 유형은 없었던 모양이다. 몇 가지 질문을 하긴 했지만, 끝내는 '야~ 너 멋지게 산다'는 말로 내게 하고 싶었던 보험 이야기를 꿀꺽 삼켜버리고 만다.

물론 그 친구도 오죽하면 그랬겠냐마는, 오랫만에 친구 만난다고 반가운 마음으로 나간터라 배신감이 더욱 크게 밀려왔었다. 그렇게 씁쓸하게 헤어지고는 다시는 연락이 없다. 아직도 보험 설계사를 하고 있으려나;;;

갑자기 걸려온 친구의 전화는 '결혼 아니면 보험'이라는 말이 있다. 슬픈 건, 그 말이 100% 확실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20대 초반의 숱한 만남들이 30대에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되는 인연은 되고, 안될 인연은 끝내 접어지는 것이 인생의 큰 흐름일 것이다. 그 끊긴 인연을 결혼과 보험을 계기로 티나게 어거지로 엮으려니 될 리가 없다. 조금 고달프더라도 그 인연들을 다 챙기며 왔더라면, 남들이 슬슬 피하게 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나처럼 포기하던가...;;;

끝내 외면하고 말았던 1월에 결혼한다는 누군지 알 수 없는 후배는 신혼여행을 잘 갔다 왔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 찝찝한 마음에 한자 적었다. (진짜 그 후배 누구였을까....? ㅜ.ㅡ)


덧글

  • 공룡사랑 2010/02/09 16:54 #

    보험보다 더 무서운 건 다단계죠. 운동권이라고 직장에서 떨어졌던 과대 언니가 다단계 사원이 되어서 연락왔었는데,
    제가 4차원에 사오정이라 탈출하는 데 3시간으로 끝난 사건이 있답니다.
  • 미친공주 2010/02/09 17:11 #

    헉... -ㅁ-
  • blitz고양이 2010/02/09 17:27 #

    한달에 한번 정도 만나지 않으면 친구 아니잖아요. 그냥 지인이지..
  • 미친공주 2010/02/09 19:14 #

    ㅋㅋㅋㅋ
  • 腦博士™ 2010/02/09 18:38 #

    평소에 연락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연락을 해오면
    돈문제 or 영업 or 결혼 같은 일들일 경우가 많아서 꺼려져요..
  • 미친공주 2010/02/09 19:14 #

    무섭다니까요 ㅠ.ㅜ
  • ALICE 2010/02/09 21:42 #

    공감해요~갑자기 미니홈피 방명록에 인사하더니 며칠 뒤 결혼..-ㅁ-;;;;
  • 미친공주 2010/02/10 09:35 #

    전형적이죠. ㅜ.ㅡ
  • 다스베이더 2010/02/09 21:46 #

    전 아직 나이가 적다보니 결혼까지는 없는데 다단계는 겪어봤었네요. 21살에 다단계라니 씁쓸하더라고요...
    물론 최근 가장 많은 연락은 역시 군대 Orz
  • 미친공주 2010/02/10 09:36 #

    다단계는 진짜 허걱..
    군대 정도는 양반이죠 ㅋㅋㅋ
  • set the ruby 2010/02/09 22:53 #

    아 정말 공감 지대로에요 ㅋㅋㅋ 결혼 + 다단계 + 취직 정보 갈취하기(?) 하나 더요~~~
  • 미친공주 2010/02/10 09:36 #

    ;;취직정보갈취? 그런것도 있어요?ㅋ
  • TokaNG 2010/02/09 23:01 #

    결혼은 흔쾌히 축하해줄 수 있지만 보험은 춈..=ㅅ=a
    고모님이 보험설계사셨어서 학창시절부터 엄청 시달렸습니다.=_=;;;
  • 미친공주 2010/02/10 09:37 #

    ;; 보험설계사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려해도 부정적으로 보게끔 만드는 현실..
  • 안넝 2010/02/09 23:05 #


    풉..저도 다단계에서 가뿐하게 3시간 연설을 들어주고 나왔죠..
    지금 그 친구? 제가 안 속아 넘어가는 걸 보고 지금은 발 뺏답니다..그래두 다행이죠.
  • 미친공주 2010/02/10 09:37 #

    친구하나 구제하셨네요 ㅋㅋㅋㅋ
  • 만월님 2010/02/10 13:04 #

    오랜만에 연락오는 친구는 결혼, 보험, 다단계...
    가끔 친했던 친구가 아침9시에 강남에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어찌해야하나 난감하답니다...
  • 미친공주 2010/02/10 13:58 #

    ....;;;; 친했던 친구라면 그나마 낫죠 ㅎ
  • SoulbomB 2010/02/10 14:18 #

    이래서 평소에 미리미리 인맥관리 연락을 해둬야 전략이 잘 먹히는... 음?
  • 미친공주 2010/02/10 15:19 #

    ㅋㅋㅋ
  • set the ruby 2010/02/10 21:12 #

    뜬금없이 전화해서 만나면 (취직관련) 어떻게 한거냐, 누구 소개시켜달라, 연결해달라 - 이런거요 ㅎㅎㅎ 막상 해주면 입 닦고 -
  • 미친공주 2010/02/11 09:53 #

    아.. 그러기도 하는군요 ㅉ
  • 2010/02/13 12:39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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