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빼앗긴 4월과 교묘히 맞아떨어진 '웃음의 대학' 잡담

연극에 전혀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왔을 '웃음의 대학'을 보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를 찾았다. 그다지 문화적인 인간은 아니었기에 대학로를 찾은 것도 오랫만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깨끗하게 정비된 거리를 보며 놀라고 말았다. 예전에 가봤던 소극장을 상상했는데, 아트원씨어터는 제법 근사하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내부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내가 경험했던 객석은 오래 앉아있으면 불편한 곳이었는데, 이곳은 소극장의 묘미를 살리면서도 제법 극장의 형태를 갖춘 곳이었다. 몇년 만에 찾은 소극장 공연에, '아.. 연극 보러 다닐만 하구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연극을 볼때는 무조건 일찍 가서 표를 받아놓는 것이 좋다. (물론 함께 간 동생이 준 팁이다) 대부분 선착순으로 좌석 배치가 되는 경우가 많고 소극장 일수록 앞자리에서 느끼는 감동이 생생한 법이다. 일찍 간 우리는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헉-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바로 발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무대가 가까웠다. 덕분에 배우가 흘리는 땀방울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웃음의 대학의 시놉시스를 미리봤다면 이 연극을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제2차 세계대전, 비극의 시대에 희극을 쓰는 작가와 검열관과의 대화라... 이 얼마나 딱딱하고 재미없게 느껴지는지. 게다가 단 두 사람이 이끌어가는 연극이라니, 지루할 것 같이 느껴지는 요소는 다분하다. 그런데 연극을 보고 나니, 이 연극이 롱-런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연극이 재미있는 이유는 헛점을 찌르기 때문이다. 희극 작가는 '웃음'을 통해 정부의 검열에 대해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싸움을 통해 그는 점점 더 재미있는 작품을 탄생시켜 나간다. 지독히도 보수적이며 태어나서 제대로 웃어본적이 없다고 자부하던 검열관도 그에게 동화되어 웃음을 찾아간다. 감동적인 이 연극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웃음의 힘은 사람을 바꾼다'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 중 누구라도 하루에 한번 이상은 박장대소를 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린시절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폭소를 터트리던 심장은 점점 굳어지고 만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한계치는 정점에 달해있는데,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웃을 일이 없다. 

게다가 지난 4월은 유난히도 웃음기를 싹 뺀 한 달이었다. 물론 그럴만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긴 했지만, 그 사건들이 가져오는 우울함을 이겨내는 것도 웃음의 힘이다. 개콘이나 예능 프로를 사람들이 보는 이유는 단순히 바보상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잃었던 웃음을 찾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것들이 어떠한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검열되어 결방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배우 전병욱 & 송영창

검열관 역과 작가 역을 맡은 사람은 매 공연마다 바뀐다. 내가 갔을 때는 검열관 역은 송영창 씨가, 작가역은 전병욱 씨가 맡았다. 송영창씨는 TV를 통해 자주 보았고 그 연기력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전병욱 씨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작가 역에 롤러코스터의 정경호씨도 출연 중이어서 그걸 보고 싶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연극을 보고 나니 전병욱씨에게 홀딱 매료가 되고 말았다. 등장 인물이 적을수록 연극의 재미는 배우의 역량에 전적으로 좌우될 수 밖에 없다. 두 분의 땀방울에 감동이 두 배가 되었다. 허탈하지 않는 여운이 남는 웃음을 느껴보고 싶은 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