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수 없었던 슈렉4, 유부남에게 일침을 가하다 조조할인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구절로 끝나는 옛날 동화들에 대해 어느 순간부터 "정말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의, 왕자와 결혼한 백설공주의 결혼 생활은 남달랐을까?하는 의문 말이다. 그런 의문이 들었던 것은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결혼하면 무조건 행복해진다는 주입식 교육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 세상엔 행복하다는 부부들 보다 불행하다는 부부들의 목소리가 더 높다.

슈렉 포에버를 보며 미친듯이 웃었다는 혹자의 리뷰를 보고 머리를 비우고 웃어보려고 극장에 갔는데 보는 내내 웃음이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슈렉을 보며 웃었다는 그 사람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부러움마저 들었다. 슈렉 포에버가 마지막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모든 동화의 마지막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진짜 결말일까?하는 발상에서 시작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 스포일러가 꽤 있습니다.  

피오나의 표현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아이들과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내, 그리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친구들과의 매일매일이 슈렉은 문득 지겨워진다. 결혼을 하고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권태이며, 특히 유부남들은 공감할 권태이다.

'예전에 나 참 잘 나갔었는데~' 젊었을 때는 대형사고 한 두번은 쳐봤고, 나 좋다는 여자도 줄을 서봤고, 친구들 사이에서 큰소리도 땅땅치며 뭔가 크게 한몫하며 살 줄 알았던 내가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샐러리맨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이따금 한숨 쉬어보지 않은 유부남이 세상천지에 몇이나 될까. 단 하루만 20대 그 날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들이 얼마나 많겠느냐 말이다.

현실의 유부남들과는 달리 만화 속 슈렉은 계약을 통해 단 하루의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에게 괴물이었던 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위협하고 신나게 진흙탕을 뒹굴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을 만끽한다. 그래서 슈렉은 행복해졌을까?

슈렉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영원히 탑에 같혀있을 것만 같았던 피오나 공주는 스스로 탈출을 해 여전사가 되어 있다. 당신의 아이들을 키우며 평범한 주부가 된 당신의 아내 역시도 당신과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세상 어디에선가 완연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 흔히 '내가 구제해줬지~'라는 표현을 쓰는 부부들의 관계는 누가 누구를 진짜 구제해준 것일까.

그나마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었던 D라인 고양이. 하지만 그 안에도 메세지는 담겨있었다. 슈렉이 느꼈던 현실의 권태로움이 슈렉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을지 미리 보여준 샘플이 D라인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슈렉의 세계에서 장화를 신고 날렵한 손톱 놀림, 칼놀림을 선보였던 고양이는 사랑받는 애완 고양이가 되면서 지극히 무료하지만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만일 슈렉이 결혼 생활의 권태로움을 그대로 묻은채 살아갔더라면 D라인 고양이처럼 권태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일상을 살고 있었겠지.. 대다수의 결혼한 부부들의 일상처럼.

슈렉 포에버에서 자유로운 하루를 추구했던 위험한 경험 때문에 슈렉은 평범한 일상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게 될 것이다. 여타 동화와 같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그저 뻔한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슈렉답지만, 그래서 또 맥이 빠진다. 아마도 내가 일상을 잊을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갔다가 똑같은 일상을 보고 돌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슈렉 포에버는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의 결정판이다. 그래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고 웃을 수가 없게 된다. 특히나 매일의 권태로움에 지쳐있는 결혼한 부부들을 향해 '너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건지 정말 모르고 살래?'라는 직접적인 메세지를 던진다. 온갖 상상력과 동화 속 이야기를 조합한 아이디어들이 집합해 표현하고자 하는 결론이 저런 지극히 현실적인 교훈이라는 것이 씁쓸하기도 해서, 그냥 '외모가 전부가 아니다'라는 슈렉 1때의 단순한 메시지가 그리울 지경이다.


덧글

  • TokaNG 2010/07/05 14:04 #

    권태라는 것은 지독한 편안함과 행복함 속에서 나오는 악동인 것 같아요.
    한마디로 권태롭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배부른 소리일지도..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로우면 권태를 느낌 새도 없을 걸요?
    평화에 찌든 사람들이 한번쯤 해보는 발칙한 생각일지도..
  • 미친공주 2010/07/05 15:07 #

    ^_^ 그렇죠. 행복과 권태는 종이 한장 차이가 아닐까요? ㅋ
    결국 배부른 소리인거죠 ㅎㅎ
  • klopstock 2010/07/05 19:11 #

    유부녀는 결혼생활이 권태롭다는 데에 공감하지 않는가요? 소설 보니까 유부녀들도 지겨워 미칠라고 하던데.
  • 미친공주 2010/07/06 09:23 #

    -- 유부녀라고 결혼생활에 권태를 왜 안느끼겠습니까;;; 단지 슈렉에서는 주인공에 촛점이 맞춰지니까요 ㅎ
  • silvir 2010/07/05 22:46 # 삭제

    충격적인 방법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것 자체도 뭔가 좀... 나이 더 먹으면 또 권태를 느낄텐데 이런 방식으로 근본적인 해결이
    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지극히 미국스러운 영화같군요.
  • 미친공주 2010/07/06 09:23 #

    ㅋㅋㅋ 미국스럽다.. 그렇죠 뭐 ㅎ
  • W 2010/07/05 23:20 # 삭제

    메시지도 명확하고 캐릭터들도 귀엽고 한데,
    솔직히 이야기 전개 자체가 너무 지나치게 뻔했습니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풍성했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고 제 경우 3D관에서 봤는데 전반부는 '3D극장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었다가 수정한' 느낌이 들 정도로 눈이 불편하더군요. 진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즐겁다,웃기다,유쾌하다'라는 말과 얼마나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꽤 거리가 있는 듯.
  • 미친공주 2010/07/06 09:24 #

    저도 3D로 봤어요. 3D가 어울리는 부분은 아무래도 마녀들과 싸우는 후반부 아니었을까 싶어요.
  • 해색주 2010/07/06 03:21 #

    그래도 저는 일탈하는 것이 좋아요(그러나 마눌에게 쳐맞는다.) 아내랑 보면은 절대 안될 영화군요. 첫번째 사진 저는 동감합니다. 아내와 저 사이에 사내 아이가 넷이다 있다보니.
  • 미친공주 2010/07/06 09:24 #

    헉.. 진짜 위대하시네요. 사내아이 넷이면 일탈을 하고 싶으실만 한데... 솔직히 아내분이 더 대단하네요 ^^:;
  • AO 2010/07/06 10:46 #

    3편을 못 봐서 이번 걸 볼까 말까하고 있었는데 재미도 그냥 그렇다니 흥미가 수그러드네요
  • 쇠밥그릇 2010/07/06 11:57 #

    제 이야기 보는 것 같네요.
  • 아쥬나이 2010/07/06 12:49 #

    저는 엄청 재미없었는데 돈도 아까울 지경...
    슈렉이 갖고 있던 재미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지고 .. 무슨 디즈니의 중고생용 가족영화 보는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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