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불꽃, 당신 안에 나영 없나요? TV이야기

시작부터 막장 코드를 가득 안고 출발한 '욕망의 불꽃'. 여기저기서 하도 막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에,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빠져들어 지난 주말 1회부터 쭉 보게 되었다. 그런데 보고 나니, 왜 막장이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인기가 있고 이슈가 되고 있는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드라마의 등장 인물 중에 정상인은 하나도 없다. 재벌인 아버지(이순재)는 자식들을 제 손에 휘두르려 하고 기업을 위해 정략 결혼을 시키거나 친구와 약속을 위해 정략 결혼을 시키는데 하나의 주저함이 없다. 밖에서 낳은 자식을 하나, 둘 데려오는데도 물론 거리낌이 없다. 그의 아내(이효춘) 역시 부를 누리고 살면 그 뿐, 타박은 하지만 남편이 아이를 낳아오던 자식끼리 싸우던 큰 관심이 없으며 귀도 얇고 생각도 별로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첫째 아들 부부(김병기, 이보희)는 다른 엄마의 자식인지라 재벌가를 물려받는 것에 한발 물러나 있는 척 하면서 나머지 동생들이 박터지게 싸우면 어떻게든 득을 볼까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다. 둘째 아들 부부는 정략결혼으로 이루어진 관계로 둘 사이의 애정이라곤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아내(성현아) 덕에 재벌이 된지라 큰 소리치는 아내 앞에서 자존심 세우기에 급급한 남편(조성하)으로만 그려진다.

셋째 아들 부부가 이 드라마의 중심이다. 자기 의견을 내세울 줄 모르는 내성적인 공부벌레(조민기)를 얻기 위해 나영(신은경)은 언니를 불행에 빠트리고 첫사랑(엄수정)이 낳은 아들(유승호)을 감쪽같이 자기 아들로 키우려고 그녀를 차로 치어 뺑소니를 하기에 이른다. 나영이 처녀시절 낳은 사생아(서우)는 나영과 똑같은 악녀로 자라나 유승호를 유혹하게 된다.

내용이야 어떻든 이 드라마는 나영이 얼마나 악녀인지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어린시절부터 부자가 되길 간절히 염원했던 소녀. 내 힘으로 부자가 되느니 부잣집에 시집가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던 여자. 그 행복을 갖기 위해 언니든, 아빠든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비정상적인 부부 관계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는 악녀. 그리고 아들 김민재(유승호)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생모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엄마. 그야말로 악녀 종합세트이다.

그런데 나는 그 안에서 이 시대의 풍토를 엿보게 된다. 물론 일반 사람들은 살인을 공모하거나 언니를 강간하게 만드는 이런 막장 인생을 살지는 않겠지. 하지만 이 시대 사람들이 가진 욕망 두 가지를 나영은 대변한다.

첫째, 부에 대한 갈망이다.

굳이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고, 돈에 눈이 멀지 않을 사람도 드물다. 특히 사람들의 부에 대한 욕망은 빈부 차에 대한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빈부차가 커지는 요즘 세태도 한몫을 한다. 가진 사람은 더 가지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더 갖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면서, 우리 사회 한귀퉁이부터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가진자들을 향한 막무가내 묻지마 범죄들, 내가 아닌 다른 모두는 행복한 것 같아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는 범죄자의 고백들.. 가족을 지켜야 할 아빠는 빚의 나락에 빠져 가족을 다 죽이고 자살을 하고 마는 현실. 돈 몇푼에 실제로 청부살인이 이뤄지고 있는 요즘. 매일 수없이 충격적인 범죄 뉴스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돈'이 얽혀있는 사건들은 꽤 많은 포션을 차지하고 있다.

굳이 범죄가 아니고서도 현실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 중, 돈에 한숨 짓고 불행하다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흔히 돈의 노예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덫을 끊고 돈에 연연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 욕망의 극단적인 모습을 욕망의 불꽃에서 나영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 자식에 대한 소유욕이다.

우리나라 정서상 전통적으로 자식은 부모의 소유라는 생각이 강했었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부모와 몇대가 같이 살았고, 일찍부터 가정을 꾸리고 살았던 풍토 때문에 '내'가 우선이라는 생각은 덜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의 풍토는 많이 다르다. 부모들은 아직도 자식이 나의 소유라는 정서를 버리지 못하고 있지만 자식들은 '내'가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관계 사이에 갈등이 없을리 없다. 부모는 자식에게 마음껏 베풀지만 대신 자식이 내 마음대로 자라주길 바란다. 내가 원하는 직업, 내가 원하는 배우자, 내가 꿈꿨지만 이루지 못한 것들을 자식이 대신 이뤄주길 바란다. 자식들은 부모가 베풀어 준 것을 고마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나는 부모와 별개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서른 넘어서까지, 결혼할 때까지, 결혼한 후에 마저 부모에게 의지한다. 그러면서도 부모가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답답하게 느낀다. 

그런 관계가 극에 달하니, 중학생 소년이 온가족을 불에 태워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빠만 없었으면 가족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다는 소년, 부모의 강요와 기대에 못미치는 것에 괴로워하며 자살하는 청소년들, 가출을 하거나 엇나가는 아이들. 소통이 단절된 하나하나의 가정들이 모여 이 사회를 이루고 있으니 문제가 없을리가 없다. 부모와의 관계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갖게되는 인성이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모든 관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 극한의 모습을 나영은 보여준다. 지극한 아들 사랑, 모든 것을 다 퍼주지만,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강요하며 키우는 엄마. 나영이 "내가 온전하게 소유한 건 민재뿐"이라고 외쳤을 때, 아 정말 부모의 소유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하지만 첫회에서 이미 보여줬듯이, 비정상적으로 극단화 된 욕망은 비극을 낳게 될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원하던 것을 갖게 되어도 행복하지 않고, 갖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를 파괴하게 만드는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막장 종합세트를 섞은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망가져가는 나영처럼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 뿐이다. 진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