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죽이는 댓가는 만불, 지렁이 먹는 댓가는 10만불 미분류

왜 갑자기 '정의' 타령인가 했다. 올해 서점가를 가장 뜨겁게 달군 책 중 하나라는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은, 타인이 권하지 않았다면 내 스스로 읽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요즘의 나는 생각하기를 퍽 싫어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선물 받았던 책 중에 인상적인 책이 있었다. 그레고리 스톡의 질문의 책이라는 책이었는데 거기에는 140여개의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이 쓰여있었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수명의 1년을 빼앗아 내 수명 1년을 늘릴 수 있다면, 원하는 방식대로 죽을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을 선택하겠는가, 집에 불이났을 때 가족 이외에 딱 하나 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도덕적인 갈등과 양심에의 선택, 현재의 내 삶을 바라보는 내 시각에 대한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철학이라는 것일테다. 인생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생활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딜레마에 대한 선택부터 크게는 사회 구성원들끼리의 이해의 충돌, 국가간의 투쟁과 협상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일 것이다. 그레고리 스톡의 질문의 책이 개인의 삶에 더 촛점을 맞추고 있다면, '정의란 무엇인가'는 개인이 조금 더 큰 범위의 사회 현상에 대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있었던 충격적인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예시로...

만일 당신에게 소수가 희생을 하여 다수가 행복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런 예를 보자. 남대서양을 구명보트에 탄 채 표류하던 선원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어린 17세 남자아이가 병에 걸렸고, 나머지 선원들은 그 아이의 살과 고기를 먹으며 표류를 하다 버텨서 결국 구조되었다. 그런 경우 한 사람의 희생이 세명을 살렸지만 우리는 그들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각각 다를 수 있다. 정말 파커를 죽여서 얻는 사회적 비용과 이익이 컸냐는 관점으로 보는 사람과 설사 이익이 컸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써의 도덕적인 분노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적 비용과 이익을 따지는 것이 옳지 않게 느껴지겠지만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관점은 그런 사회적 비용과 이익을 근거해서 나오는 결론이다. 딜레마가 느껴지는지?

1937년 한 철학자는 고통과 쾌락을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몇 가지 질문으로 설문을 했다. 이런 고통을 얼마를 받으면 참겠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앞니를 뽑는데 4500불, 주인없는 고양이를 죽이는 댓가에는 만불, 살아있는 15cm 지렁이를 먹는 댓가는 10만불 등의 평균이 나왔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고통과 쾌락을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는 증거라고 믿는가? 사실 설문자의 1/3은 얼마를 준다해도 저런 고통은 겪고 싶지 않다고 대답을 했다. 사람의 감정에 대해 가격을 매기려는 이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그렇다면 결국 소수의 희생이 다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결론을 무엇으로 환산해 판단할 것인가.  

정말 모든 사람들이 고양이를 죽이는 것보다 지렁이를 먹는 것을 10배 싫어했을까?

더 싫어할 수도, 혹은 차라리 지렁이를 먹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이렇듯 이 책은 우리가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했을 문제들에 대한 딜레마를 느끼게 만드는 예시들을 끊임없이 던져준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안락사를 개인 선택에 맡겨야 하는지를 묻는다. 나아가 내 몸을 식인용으로 판매하는 행위는 어떠한가, 라고 한층 더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자유시장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면 군인에 대한 징집이 아닌 고용제도는 어떠한가? 돈이 있는 사람들이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군대의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혹은 대리모는 어떠한가? 돈을 받고 아이를 낳아주기로 한 대리모가 갑자기 마음이 변해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한다면 계약 위반인가, 혹은 정당한 권리인가? 다리가 불편한 프로골퍼에게 카트를 타고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은 장애인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인가, 혹은 다른 정상인들에 비해 커다란 혜택을 주게 되는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개운한 느낌은 가질 수 없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해왔던 고정관념들이 다시금 흔들리는 계기가 됐던 건 분명하다. 나는 오히려 이 책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행복을 뒤흔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정치가나 경제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무언가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조금은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아니, 너무 큰 기대인건가) 어쨌든, 이 책이 서점가의 화두였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갔고, 또 이 책이 화두여서 어쩌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덧글

  • 라임에이드 2010/12/13 18:47 # 삭제

    돈이 있는 사람들이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재산 - @'를 주고 군대의 의무를 지게 한다면 충분하게 옳고도 남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적정선이 거기는 아니겠지만, 정당한 댓가 = 시장가격으로 가정해놓고 질문을 하는 것은 함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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