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하얀 도화지를 2억 8천만원에 샀다면? 잡담

친구와 싸워본 적이 있는가? 친구와 싸운다는 건 거의 학창시절에나 해당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또 중년이 되어서도 싸움은 벌어질 수 있다. 내 주변에서도, 나도, 친구와 이따금 싸워가며 지내왔다. 요즘도 심심치 않게 싸움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원인은 하나다. 너무 가까워서이다.

대부분의 경우 가깝게 지낸 친구가 각자의 상황의 변화를 겪으면, 친구의 입장에서는 '쟤 변했어'라며 실망하게 된다. 그렇지만 살면서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란 드물다. 취업을 하면서, 결혼을 하면서, 또 그 이후에.. 학창시절의 공통된 삶과 달리 너무 다른 삶을 걸어가는 친구들이기에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싸움이란 말그대로 칼로 물베기 같은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친구들간에 묘한 경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아도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잘나갈 때, 갑자기 좋은 남자를 만나 신데렐라가 되는 것을 볼 때, 나는 인생이 늘 똑같고 지루한데 정말 재미있게 사는 것 같은 친구가 있을 때.. 우리는 못난 열등감과 질투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러다가도 힘들다며 어려운 속내를 서로 털어놓다보면, 그래 인생 다 그게 그거지라며 토탁토탁하게도 되는 것, 그런 것이 '우정'이라는 것일 것이다.

이 연극은 그런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는 친구들이 싸우는 이야기. 그 싸움 속에서 웃음은 유발되고, 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동무를 하며 우정을 유지해간다.

청담동에서 피부과 의사를 하고 있는 수현은 앙트로와의 그림을 2억 8천만원에 구입한 후 지방대학 교수인 친구 규태에게 자랑을 한다. 규태는 하얀 색 바탕에 하얀 줄이 그어져 있는 '판때기' 를 거액에 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수현은 규태의 그런 태도가 못마땅하다. 둘은 각자의 감정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성격의 친구 덕수에게 얘기하며 지지해주기를 바란다. 둘 사이에서 덕수는 어쩔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덕수는 결혼을 앞두고 고민이 많은 상태다.

만일 내 친구가 2억 8천만원짜리 하얀 도화지를 샀다면? 나 역시도 먼저 바보 같다고 손가락 할지도 모르겠다. 그 저변에는 2억 8천을 그림 한 장 값으로 지불할 수 있는 친구의 능력에 대한 질투도 깔려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들이라면 친구를 이해하기에 앞서, 묘한 열등감으로 인한 손가락질이 우선시 될 것이다. 대놓고 싸움이 아니더라도 다른 친구들에게 흉볼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 변했다며..

왼쪽부터 류태호, 윤제문, 유연수

지방대 교수 규태 역을 맡은 류태호씨는 영화와 드라마의 단역 출연으로 낯이 익었다. 의사 수현 역할의 윤제문씨는 아이리스 대태러팀 실장과 영화 평양성에서의 활약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웃음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덕수 역의 유연수씨는 '트루웨스트' 연출가로도 활동한 베테랑이다.

연기력이 검증된 세 사람의 속사포 같은 말싸움들은 '중년 남자의 우정이 이렇게도 치졸해질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이를 때까지 지칠줄 모른다. 단순한 공간, 단순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연기력 하나로 웃음을 줄 수 밖에 없고, 전적으로 배우들의 능력이 탁월해야 가능하다. 또, 마냥 웃고 끝나는 연극이 아니라 극장에서 돌아 나오면서 나와 내 친구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이다.

일요일 낮에 극장을 찾았는데 극장의 규모는 꽤 큰편이었고, 좌석도 편한 곳이었다. 큰 규모의 좌석이 꽉 차는 걸 보니 반응도 꽤 괜찮은 연극인 것 같았다.

단, 아트가 공연중인 예술마당은 혜화역 근처가 아닌 한 정거장 떨어진 서울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무턱대고 혜화역 근처에서 찾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니 참고 하시길..


덧글

  • Laine 2011/02/18 13:28 #

    오 아트 아직도 공연중이군요. 저도 몇년전에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 미친공주 2011/02/18 13:30 #

    네.. 제목이 단순해서 재미없는 연극인줄 알았더니 ㅋㅋ 재밌더군요
  • TokaNG 2011/02/18 13:40 #

    2억 8천만원짜리 도화지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네요.;ㅅ;
  • 미친공주 2011/02/18 14:01 #

    말로는 하양바탕에 하얀선이 사선으로 그어진.. 그림이라고 하지만 결국 하얀 도화지이죠. ㅋㅋㅋ
    2800원 주고도 안산다고 하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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