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윗 사파리, 8시간 왕복 뱃길의 가치?! 바다 갈증

필리핀의 그 많은 섬 중, 팔라완 코론으로 굳이 여행을 다시 가게 되었던 건 다름 아닌 '칼라윗 사파리' 때문이었습니다. 같이간 친구가 동물을 너무나 좋아해서 칼라윗 사파리를 꼭 해보고 싶어했기 때문이죠. '칼라윗 게임 리저브 앤 와일드 라이프 생추어리' 이름이 거창한 이 사파리는 1975년 케냐 대통령의 선물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8종 104마리의 아프리카 동물들을 이 섬에 옮겨와 풀어놓았대요. 그러나 아프리카와 다른 기후에 적응한 동물들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얼룩말이며 기린들이 초원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며 꼭 이 섬에 가겠노라 결심을 하고 코론을 찾았던 거죠. 

그러나 칼라윗 섬에 가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클럽 파라다이스라는 허니문 리조트에서는 배로 1시간 거리,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지만 일반적으로 코론 타운에서 가려면 배를 4시간 타고 가거나 자동차와 배를 병행해서 그만큼 가거나.. 뭐, 그런 방법 뿐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인원수 5명 이상이 다 모이지 않으면 코론 타운의 여행사에서도 출발하려 하지 않아서 개별적으로 렌트를 하거나 해야 한다고..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가격은 1인당 2500페소(약 7만 5천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고 크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 건 출발 시간이 새벽 4시라는 사실입니다. 헐~~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함께 가게 된 일행의 얼굴도 보지 못한채 배가 출발했지요. 4시간의 뱃길에서 가장 힘든 건 추위와 지루함이었습니다. 설마 그리 추우랴는 생각에 얇은 옷에 살롱 하나만 두르고 간 것이 화근, 친구와 둘이 서로 꼭 붙어서 체온으로 간신히 버텨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mp3하나 가져오지 않았으니 그 지루한 시간을 남이 듣건 말건 쌩음악(?)을 불러대며 가사 아는 노래는 다 불러본 것 같습니다. 클클.. 

드디어 사방이 어스름하게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좌석에서 힘들게 앉아 꾸벅꾸벅 조는 동안 평상에서 뻗어 편히 자던 가이드가 슬슬 커피를 타기 시작해요. 추위 속에서 받아든 커피는 생애 몇번째로 꼽을만큼 맛이 있었지요. 

여행 상품 가격에 아침식사까지 포함이라는 말에 매우 기뻐했는데, 왠걸.. 정말 최악의 아침식사가 나왔습니다.

물론, 이것이 기본적인 필리피노 브랙퍼스트가 맞긴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롱가니자라고 불리는 필리핀식 소세지를 너무나 싫어해요. 특히 저 미묘한 핑크색은 색소가 가득한 느낌이랄까요? 누군가 이 여행상품을 가신다면 뭔가 간식거리는 꼭 들고 가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ㅠㅠ

배에서 밥을 먹고 어쩌고 하는 동안에도 배는 계속 움직입니다. 아.. 역시 아침 바다가 제일 아름답습니다. 온갖 희귀한 형태의 섬들이 지나갔어요. 질리도록 섬을 봅니다. 코론에서 본 검은 기암괴석의 섬과는 또 사뭇 다른 느낌들의 섬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4시간 여의 시간이 지나 망그루브 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묘한 분위기의 섬에 배가 정박합니다. 바로 칼라윗 섬입니다.

오랫만에(?) 땅을 디디니 그것조차 어찌나 반갑던지요. 앞에 보이는 빨간 지붕의 사무실에서 방문객의 이름도 기록하고 화장실도 다녀옵니다. 화장실이 썩 유쾌하지 않지만, 이 섬 안에 화장실 갈 곳이 없으니 미리 가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자, 이제 섬 안으로 슬슬 걸어들어 갑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사슴입니다. 팔라완 토착 동물이라는 칼라미안 사슴들입니다. 겁이 많은지 사람들의 나타나자 멀찍히 도망가기 바쁘네요.

꺄아~ 얼룩말입니다. 여기저기 얼룩말들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이 녀석들은 사슴에 비해 겁이 덜 한가봐요. 제법 근처에서 여러장의 사진을 옮겨봤습니다. 정말 볼수록 무늬가 희한합니다. 우리에 같혀있는게 아니냐고요? 우리에 같혀있는 건 사람의 집입니다;;;

꺄아~ 기린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자유롭게 들판을 돌아다니고 있다가 기린이 좋아하는 나뭇잎을 흔들어 대자 우르르 몰려옵니다. 역시 우리 안에 같힌 건 사람입니다. ㅋㅋ 먹이를 주는데 어찌나 기린이 혀가 힘이 센지 깜짝 놀랐어요.

어우~ 기린이 막 이~~뿨~~ 속눈썹도 길~고 바둑 무늬 코트도 걸쳤어~

섹시한 뒷태, 아우~~! 막 그냥 다 이~뿨~~~!!

기린에게 먹이를 주고 나면 이 거대한 트럭에 실려 섬 일부분을 한바퀴 돕니다. 제가 기대했던 거랑은 무척 달랐어요. 저는 그냥 들판에 동물들이 막 있고, 그 사이로 차가 달릴 줄 알았더니 우리에 가둬놓은 몇몇 동물들을 지점마다 차를 세워 구경하는 식으로.. 하지만 그 동물들은 썩 종류도 많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면, 우리나라에 동물원이 워낙 잘 되어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서울 대공원, 에버렌드, 어딜 가든 꽤 많은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잖아요? 필리핀의 동물원은 아직 그렇게 잘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칼라윗이 현지 사람들에게 여행지로 인기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저희 빼고 모두 필리핀 사람들이었어요. ㅠㅠ

기린과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더위와 거리 그 모든 것을 계산해보면 굳이 권하고 싶지 않았던 섬입니다. 1시간 이내의 클럽 파라다이스에서 오시는 건 괜찮을 것 같지만요. 특히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렌탈로 딱 칼라윗 섬만 보고 가시면 땅을 치고 후회하실듯 해요. 여행사는 칼라윗 말고도 여러 섬을 들르더라고요. 또 칼라윗에 간다고 굳이 운동화에 뭐에 안챙기셔도 될 것 같습니다. 햇볓이 작렬하니 모자와 선글라스는 필수지만요. 그냥 여름 샌달 정도면 될 것 같더라고요. 걷는 시간도 거의 없고, 바닥도 풀밭이라 무난합니다.

칼라윗 섬에서 약간의 허무함을 안고 다시 배에 오릅니다.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해서 환호성을 질렀는데 1시간 반을 간다고 하더라구요. 다시 지루한 좌절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정말 바다를 질리도록 봤네요. 호핑 코스에는 블랙 아일랜드에 들른다고 했는데, 이날은 썰물 타임이라 배가 들어갈 수 없어서 대신 근처의 다른 섬에 들렀습니다. 이름이 현지어로 4글자 정도 되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하얀 모래사장과 바다가 만나는 곳, 그 사이의 연하늘 색 옥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바다.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림입니다. 배고픈 것을 잊고 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담습니다.

바닷가에는 하얀 게와 소라게들이 가득했어요. 그냥 게는 너무 빨랐고요, 눈치없는 소라게 몇 마리가 우리 때문에 고생을 좀 했지요. 그러는 새에 점심을 다 차린 가이드가 우리를 불렀습니다.

보기에는 그냥 그래보이지만 꽤 잘 차려진 밥상입니다. 새카맣게 태운 치킨은 껍질을 벗겨 먹으면 정말 맛있구요, 오이와 양파 샐러드는 상큼하고 새우와 생선, 모두 다 맛있었습니다.

우리를 제외한 다른 필리피노들은 식탐이 썩 없어서 우리가 다 먹은 것 같아요. 함께 간 친구가 망고를 처음 먹어본다는 말에 아낌없이 양보를 해주더라고요. 말이 잘 통하지는 않지만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섬에서 점심을 먹고 간 곳은 코랄 가든입니다. 약 1시간 정도 또 이동을 해야했지요. 코랄 가든은 지난번 호핑투어 때 그냥 가지 않고 지나쳤던 곳인데... 이럴수가!! 코론에서 본 바다 중에 가장 산호도 많고 물고기도 많은 곳이었어요. 사파리가 다라고 생각을 해서 수중 카메라를 안가져갔던 것이 뼈아펐습니다. 사파리 보다 스노클링이 더 좋은 여행상품이었어요. 게다가 모든게 포함이라고 해서 그냥 왔더니 스노클 기어만 주더라고요. 따로 오리발을 꼭 빌려가시길 권합니다. 가이드가 앞에서 다 끌어주는데도 정말 체력이 방전되고 마음껏 놀지를 못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간 곳은 난파선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스노클링을 하면서 바로 아래에 세계 2차 대전때 침몰한 건보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정말 재미있었어요. 오히려 칼라윗 사파리 투어보다 다른 호핑 코스가 훨씬 좋았네요.

이렇게 저의 이번 코론 여행기도 끝을 맺습니다. 4박 5일의 짧은 일정으로 오래도 썼네요. 그래도 누군가 제 여행기를 보고 코론을 가게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아.. 다시 따뜻한 그곳이 그리워집니다. 8시간 동안 질리도록 바다를 보고 왔는데도 말이죠 ^^


덧글

  • 탄산매니아 2011/12/09 10:44 #

    치킨은 껍질채 먹으면 대박이겠네요....
    바다 색깔이 너무 이쁘네요~
  • 미친공주 2011/12/09 19:10 #

    쥑입니다. 실제로 보면 더요!
  • 2011/12/12 17:1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미친공주 2011/12/12 19:01 #

    오홋.. 좋은 책 만드는 일을 하시네요. 보람있으시겠어요 ^^

    음. 여행에 관해서는 제가 드릴수 있을만큼 팁을 드릴게요. ^^ 좋아하는 일이라서요 ㅋㅋ
    비행기값을 제외하고 국내선+숙박+식비 및 여행비 = 60만원/인당 들었어요(4박 5일 기준). 첫날은 카지노에서 밤을 샌다는 전제하에..즉, 3박 5일이 됐네요. 만약 숙소나 식비나 아끼신다면 더 저렴하게도 가능할 듯 하네요. 또 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eun800506@naver.com으로 메일주세요. 아는 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ㅎㅎ
  • 도로시 2011/12/14 16:55 #

    친절한 답변 고맙습니다.^^
    일행들과 의논해 보고 궁금한 게 생기면 염치없지만 메일 보낼게요. +_+
  • 태두야 2017/03/30 12:19 #

    와 이번에 세부경유해서
    엘니도 코론 여행예정인데 정보가 완전 방대해서 한시간내내 보고있네요 ㅠ
    정말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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