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남자가 가늘고 길게 살아남는 법 조조할인

처음 포스터를 보는 순간 "푹!" 웃음이 터져나오는 영화였습니다. 코믹 영화도 아닌 조폭 영화 같은데 풍기는 아우라가 우스꽝스러울 만치 비장하게 그려져 있었거든요. 게다가 캐스팅 된 사람들도 쉬이 찾기 어려운 비주얼들이었으니, 일부러 감독이 고르고 또 고른 흔적이 역력했죠. 대부분의 미화된 조폭 영화들의 포스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지요.

영화 또한 그러했습니다. 건달들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은 건달이 아닌 '반달'이죠. 건달도 아닌데 민간인도 아닌 애매한 사람을 반달이라고 한답니다. 최민식이 분한 반달 '최익현'이 바로 그 주인공이죠. 최민식씨가 어느 영화소개 프로그램에 나와 "여성관객들의 선처"를 호소하기에 대체 왜 그런가 했더니 좀처럼 보기 드물게 극장에도 남성의 비율이 높긴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렇게 마초적인 영화 또한 아닙니다. 오히려 마초성을 비웃는 영화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추천하고 싶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입니다.

*** 스포일러 조금 있습니다.

배경은 80년대 부산입니다. 영화 속에서 재현된 그 시대는 꽤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대부분의 굵직한 사업들은 건달들의 보호 없이는 힘들었고, 공무원들은 썩을대로 썩어 그들과 은밀히 손을 잡았습니다. 서로의 구역을 탐하고 명분을 만들어 전쟁을 벌였죠.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기 전까지는 약육강식만이 법이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서 잘 살아 남는 방법은 '박쥐'가 되는 것이겠죠.

비리공무원에 불과했던 최익현이 그 시대를 풍미하기까지의 과정은 어찌보면 판타지스럽기까지 합니다. 타고난 잔머리와 친화력, 느물거리는 아첨과 적당한 깡다구까지 고루 갖춘 그의 자질이 때를 제대로 만나 꽃을 피웠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익현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을 하기는 또 어렵습니다. 비록 실화는 아니지만 "그 시대라면 그럴법도 하다"라는 것이 영화가 주는 설득력이겠지요.  

최익현을 연기하는 최민식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일부러 불린듯한 체중으로 절로 눈길이 가는 리얼한 뱃살과 술집 어디에선가 마주쳤을 법한 농익은 '술취한 아저씨' 연기는 아예 최익현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 했습니다. 어디서 정말 마주치기 싫은 스타일이더라고요.

그러면 상대적으로 건달 최형배(하정우 역)는 멋있었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명분'을 핑계로 이권다툼을 하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태, 소위 '가족'이니 '형님'이니 칭하는 그 모든 것을 비꼬는 듯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고 보면 캐스팅 된 하정우는 썩 건달스러운 느낌의 배우는 아닙니다. 오히려 양아치스러운 느낌에 가깝다고나 할까요(감독의 전작이 비스티 보이즈였다고 하니, 감독 역시도 굳이 하정우를 조폭 두목으로 캐스팅 한 이유가 희화화는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건달스럽지 않다는 의미는 기존의 영화 속에서 미화된 건달의 이미지, 즉 덩치가 크고 비장하고 무게감 있고.. 등등의 이미지와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무휼로 작년 한해를 풍미했던 조진웅씨가 더 잘 어울리면 어울리는 느낌이지요. 비중이 아주 크진 않지만 영화에서 보니 매우 반갑더라고요. 조진웅씨가 분한 김판호 역시 멋진 조폭과는 거리가 멀었지만요. 영화 속의 조폭들이 싸우는 몇 장면은 정말 조소가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지요? 고등학교에서 전교 일진들이 무게만 잡지 막상 싸움을 하면 개싸움이라고요.

어쨌든 영화 속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가늘고 길게 사는 노선을 선택한 사람들 뿐입니다. 최익현을 포함한 나이트 여사장, 악덕 검사.. 뭐, 그런 사람들이지요. 참 희안한 건 그런 그들을 쉽게 비난하기도 어렵다는 말입니다. 뭔가 목구멍에 걸려서요.

무법천지였다는 80년대를 벌써 강산이 세번 변할 시기만큼 지나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왜들 그렇게 살았나 싶은만큼 조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지만, 그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정하고 깨끗한 세상인가요? 그렇다면 박쥐같은 최익현 류의 사람들이 발붙이기 쉬운 시대일까요, 어려운 시대일까요? 현실의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들 가늘고 길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법이 있지만 편법 또한 존재합니다. 돈과 권력은 결탁이 되어 있습니다.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요, 부족한 것이지 누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누리고자 하는 욕망은 도처에 깔려있지요. 감독이 굳이 80년대를 회고하며 조소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2년은 그 무법천지에서 살아남은 권력들이 대물림 된 세상인 겁니다. 그러니 이런 영화를 보고도 저런 시대가 있었냐며 부끄러워 할 수 조차 없습니다. 이 영화가 더욱 의미를 갖는 이유입니다.

PS: 이 영화의 캐스팅은 주역부터 단역까지 모두 대박입니다. 연기도 연기지만 이미지들이 절묘해요. 아래의 악랄한 검사 또한 어디가서 마주치기 싫은 사람이었습니다;;;

PS2: 이 영화 때문에 부러진 화살이 주춤하지 않을까 전망해봅니다. 부러진 화살이 직접 화법을 쓰고 있다면, 이 영화는 은유적이어서 거북함이 적습니다. 더 편한 마음으로 비웃을(?) 수 있는 영화였다고나 할까요.


덧글

  • 백범 2012/02/06 17:44 #

    쓸데없이 멋진놈이 되고픈 욕망만 버려도 길고 가늘게 오래살 수 있지요.

    머지않아 자칭 멋진놈들의 뻘댓글이 달라붙을 거다만...
  • 몽몽이 2012/02/06 22:09 #

    이게 남자가 현실을 사는 진짜 모습이죠.
  • 미친공주 2012/02/07 09:58 #

    그...렇겠죠? ;;
  • TokaNG 2012/02/06 23:07 #

    너무 남자들의 숨은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내서 유쾌하면서도 어딘가 한군데는 되게 찜찜했습니다.
    무엇보다, 무려 80년대의 이야기를 그려냈음에도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게 안타까웠고요.
    강산이 세번이나 바뀔 세월이 흘렀는데, 사람의 본성은 도무지 변하질 않나봐요.
  • 미친공주 2012/02/07 09:59 #

    네, 말씀하신 모든 부분이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무대만 바뀌었을 뿐, 살아남는 방법은 동일한가봅니다.
  • 백범 2012/02/07 17:26 #

    남자들의 숨은 모습이 아니라 멍청한 짓임...

    문제는 저러면 자기가 멋있을줄 아는 일부 사내들(마초들)의 얄팍한 자존심이 원인일테고요.
  • 쇠밥그릇 2012/02/07 11:54 #

    이 영화 물건이겠는데요.
  • 미도리 2012/02/07 12:57 #

    기존, 상사부일체같은 완전 상업성 영화가 아닌 것 같아,, 다소 안도감이 들더라구요 .. 조폭영화하면 일단, 코믹스럽고 경박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범죄와의 전쟁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인 것 같아요~!!! ----> 물론, 아직 안 받지만요~~~^^; .. ㅡ,.ㅡ
  • 미친공주 2012/02/07 15:45 #

    오우 그런 영화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면서도 재미가 없지는 않은게 매력이죠 ㅋ
  • kiekie 2012/03/03 16:06 #

    최형배는 '가오' 잡으려다 망하지요(....)
    현실에서는 최익현 같은 삶이 甲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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