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저를 욱하게 만드는 만화는 처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일본 만화고 꽤 오래전에 발간된 4컷 만화라지만 툭하면 밥상을 엎어버리는 남편과 묵묵히 그것을 치우는 아내의 이야기는 여자가 보기엔 썩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하지는 않았지요. 일본 열도를 감동의 도가니로 만든 만화고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을 정도였다는데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모 웹툰 작가를 원망했습니다. 제가 이 만화책을 산 건, 그 유명 웹툰 작가가 자기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만화라고 추천을 했기 때문이었거든요. 보통 만화책 1편을 보고 2편을 살지말지 결정하는데 그 작가 때문에 한 번에 두 개를 다 사버린 건데요. 결과적으로는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만..

이 4컷 웹툰의 주인공은 유키에라는 못생긴 여자입니다. 툭하면 밥상을 엎어버리는 남편 이사오와 살고 있죠. 늘 빠찡코와 경마에 돈을 날리고 백수로 뒹굴거리는 남편에게 식당에서 일한 돈을 뜯기곤 합니다. 정상적인 머리로는 이 여자가 왜 이렇게 사나 싶지요. 옆집 아줌마도 툭하면 헤어지라고 권할 정도니까요. 워낙 주인공을 못생기게 그려놓은데다 앞부분은 거의 남편의 만행에 대한 이야기라 좀처럼 유쾌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런 남편이 아주 티 안나게 유키에를 배려해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유키에가 남편에게 매달립니다. 그렇게 돈을 뜯겨가면서도 유키에가 바라는 건 남편의 '사랑' 뿐이죠. 만일 2권을 읽지 않았다면, "뭐 이런 만화가 다 있어!"하며 툴툴 거리고 말았을 거에요.

그런데 2권에서 서서히 유키에의 과거 이야기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유키에의 엄마는 유키에를 버리고 어딘가로 도망간 모양입니다. 유키에의 아빠는 지금의 남편과 하는 짓이 똑같았습니다. 아.. 그래서 이사오와 살 수 있는 거구나 싶었지요. 아빠 닮은 남편을 만나게 된다는 풍설도 생각나고요. 게다가 유키에는 학창시절 내내 못생긴 외모로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어요. 아무리 봐도 우울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4컷 만화에 담기면서 묘하게 가벼워집니다. 동정의 마음이 들면서도 픽- 하는 웃음이 새어나오죠. 그냥 거기까지였다면 이 만화는 그저그런 만화로 남았을 겁니다.
맨 마지막에 유키에가 엄마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는 이 만화가 수없이 밥상을 엎으면서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면서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넣지요. 이 만화를 다 보고 이 글을 읽으면 감동이 더 크겠지만, 이 글 자체도 너무 좋아서 소개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를 얻으면 반드시 뭔가를 잃게 됩니다.
뭔가를 버리면 반드시 뭔가를 얻게 됩니다.
단 하나뿐인,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는 어떨까요?
우리들은 울부짖거나 두려움에 꼼짝 못하거나..
하지만 그게 행복이다 불행이다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진짜로 그리고 영원히 갖게 되는 것!
저는 어릴적 당신의 사랑을 잃었습니다.
저는 죽도록 원했습니다. 찾아 헤맸습니다. 저는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이렇게 제 안에서 찾을 줄이야..
여태 꽉 쥐고 있던 손을 폈더니 거기에 있었다, 이런 느낌입니다.
엄마,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무섭지 않습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이젠 인생을 두번 다시 행복이냐 불행이냐 나누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할까요? 인생에는 그저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단지 인생의 엄숙한 의미를 음미하면 된다고 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엄마, 언젠가 만나고 싶어요. 엄마를 항상 사랑하고 있어요.
하야마 유키에 올림.
추신. 이제 곧 저도 아기를 낳습니다.
내 인생은 불행하다고 자학하시는 분들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덧글
플로렌스 2012/02/08 16:20 #
옛날에 영화로 참 재미있게 봤었는데...초반만 보면 이게 뭐야! 싶지요.미친공주 2012/02/08 16:28 #
영화 잼나나요? 이걸 어케 영화로 만들까 싶기도 했습니다 ㅋㅋ플로렌스 2012/02/08 16:30 #
재밌어요! 저야 원작 만화 안보고 영화로만 봤었는데...비교해보시면 더욱 좋을 듯.아무것도없어서죄송 2012/02/08 16:22 #
실제로도 저런 사람 많죠.미친공주 2012/02/08 16:28 #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