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교사가 마약을 만들어 판다? '브레이킹 배드' TV이야기

10년간 방영된 최고의 미드 중 하나네, 에미상을 받은 미드네 이름만 많이 들어봤던 '브레이킹 배드 시즌1'을 드디어 보게 되었습니다. 명성에 비해 소재는 엽기 그 자체. 고등학교 화학 선생이 마약을 만들어 판다는 극단적인 소재를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했지요. 더욱 엽기적인 건 이런 사건이 단순히 허황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기도 했다는 겁니다. '크리스탈, 아이스' 등으로 불리는 필로폰은 다른 마약에 비해 재료를 구하기 쉽고 화학 지식이 있으면 집에서도 제조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하네요.

화학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월터는 동료와의 갈등으로 연구소를 나와 고등학교 화학교사가 되었습니다. 연구원 시절에 구매한 고급 저택의 대출금도 채 갚지 못한 상태에서 폐암 3기의 시한부 선고를 받죠. 순간 그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은 가족. 뇌성마비를 앓는 아들과 아내, 그리고 아내의 뱃속에 있는 딸을 그대로 두고 죽을 수는 없습니다. 가족들에게 유산이라도 남겨주겠다며 옛 제자와 함께 마약을 제조하고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마약조직과 얽히게 되는 것이 브레이킹 배드 시즌1의 내용입니다.

시즌을 보는 내내... 이따금 빵 터지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만, 뭔가 모르게 갑갑합니다. 월터는 전혀 악의가 없는 상태에서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오해를 받지요. 전혀 악의가 없는 상태에서 상황은 점점 꼬이고 말려갑니다. 의도하지 않게 늪에 빠져들어 가는 사람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면 재미있겠지만 저는 이런 식의 답답함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서요.

그러나 만약 제가 미국 사람이었다면 이 드라마가 재미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드라마는 미국이 현재 처해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풍자해주고 있으니까요. 모기지에 발목 잡혀 교사를 하면서 세차장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현실, 암에 걸리면 어마어마한 치료비 부담에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 낫다는 진실, 마약과 일확천금의 환상에 찌든 될 대로 되라는 저층민의 삶까지.. 그 모든 것들이 웃기에는 제법 씁쓸한 맛이 날 테니까요. 그래서 사면초가에 갇힌 월터가 마약조직의 두목이 되는 과정들이 일종의 판타지로 위로가 될 법도 합니다.

그보다 저는 이상한 장면 하나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월터가 암 선고를 받은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고 치료를 포기하려 하자, 모든 가족이 들고 나서서 치료를 받기를 권하는 장면이었죠. 치료를 받는다고 낫는 병이 아니라 몇 개월 삶을 연장할 뿐이라면, 그 이후 가족에게 남길 것은 빚밖에 없다는 생각에 월터는 치료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지요. 월터는 치료를 받는데 드는 어마어마한 돈을 어떻게든 마련하겠다는 가족들에게 묻습니다. 암 치료를 받으면서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몇 개월 삶을 연장한다고 '살아있는' 거냐고요. 월터가 그렇게라도 삶을 연명하기를 강요하는 것은 제 눈에는 가족의 '욕심'으로 보였습니다. 결국 마음 약한 월터는 가족들을 위해 치료를 받기를 결정하고, 그 때문에 더욱 열심히 마약을 만들어 팔게 되었지만요. 그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갑갑했지요.

누군가 저에게 "브레이킹 배드, 재밌어?"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다지.."라고 대답할 겁니다. 시즌 1만 본 상태에서는 그렇게 빠져들어 봐야 하는 이유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요. 브레이킹 배드의 진가는 시즌 3,4에서 폭발한다고 하지만 그것까지 봐야 할지는 의문이 듭니다. 즉, 제 취향은 아니었던 미드였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인기가 많은 미드인 만큼 코드가 맞는 분들은 재미있게 보실 수도 있을 겁니다. 화학 교사이기 때문에 닥치는 어려움을 화학적인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부분들은 기발하긴 하거든요.


덧글

  • 엘러리퀸 2012/02/23 20:58 #

    CSI에서인가 어디에서는 화학과 대학생이 마약 만들어 팔다 살인이 일어나느 에피도 봤던 것 같습니다.(진짜 화학만 좀 알면 할수 있는건지--;)
  • 미친공주 2012/02/24 15:54 #

    -a-;;;
  • Hyu 2012/02/23 23:35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tvh&oid=055&aid=0000189717

    국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전 끊임 없이 사고를 치고 까부는 제시 핑크맨 때문에 갑갑하게 봤습니다.
  • 쭈꾸미 2012/02/24 00:07 #

    저도 브배가 그렇게재밋다길래 시작했다가 정말 짜증나고답답해서 보다그만뒀네요ㅋ정말이해할수없는부분이많았어요ㅋㅋ
  • 몽키 2012/02/24 02:42 #

    브레이킹 배드 너무 재미있어서 전 시즌 4까지 다 봤어요. 위에서 너무나 잘 요약해주셨지만, 저에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선한 사람이 악당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잘 표현하여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선택을 해가는 과정에서 점점 악의 굴레로 빠져들어가는 것을 시청자는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선택들이 이해가 안되는게 아니라, 너무나 잘 이해할 수밖에 없죠. (악당들의 선택을 동감했던 드라마는 이전까지 좀처럼 없었기에 이점에 미국 시청자들이 매료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타이틀이 정말 잘 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죠. http://www.urbandictionary.com/define.php?term=Break%20bad
  • 미친공주 2012/02/24 15:55 #

    음.. 왜 인기가 많은건지 당췌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들을 잘 설명해주셨네요 ^^
  • 휘오름 2012/02/26 22:52 #

    나름 미드좀 본다고 하는데 처음들어보네요..꼭 봐야겠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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