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로만 25년, 밥보다 더 든든한 죽 '초원' 바람이야기

치아 교정을 해서 음식을 씹지 못하는 친구와 얼마 전 장염을 앓아 체력이 쇠해진 나. 두 사람이 만나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몇 종류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반 체인 죽집을 갈까 하다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광화문에 유명한 죽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죽으로만 벌써 25년, 광화문 토박이라면 한 번쯤 가봤을 초원 죽집을 소개합니다.

02.735.5904 / 서울 종로구 당주동 160 변호사회관 빌딩

초원 죽집은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변호사빌딩 건물 지하상가에 있습니다. 찾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특히 밤에는 현란한 간판들 사이에서 저렇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그동안 저 간판을 못 봤을까 싶을 정도이지요

지하 아케이드로 내려가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규모가 아주 작지는 않았어요. 가게 분위기는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90년대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사장님 부부 두 분이 함께 운영 하시는 것 같았는데, 첫인상부터 참 좋았습니다. 매우 친절하셨어요.

메뉴를 골라봅니다. 죽은 9천원~만원선. 해삼과 홍합이 들어간 초원죽이 대표 죽이라고 하는데, 이날은 왠지 팥죽이 땡겼어요. 전 동짓날 팥죽 맛도 못 본 불쌍한 영혼인지라.. 그리고 음식을 아예 씹을 수 없는 친구는 스프 타입의 잣, 호두, 깨죽 중에서 잣 죽을 선택했고요.

죽이 나오기 전, 반찬이 먼저 등장합니다.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반찬 상에 깜짝 놀랐습니다. 반찬은 전반적으로 간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죽과 함께 먹기에는 괜찮았어요. 무엇보다 저를 반하게 한 것은 저 우엉. 태어나서 먹어본 우엉조림 중에서 가장 연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간이 세지 않은 두부조림. 고추기름을 쓴 것 같은데 거의 자극이 없었어요. 뒤편으로 보이는 알록달록 예쁜 계란말이. 달걀 흰자만을 사용해 당근과 함께 부쳐낸 것입니다. 짭짤해도 참 맛있었어요. 든든했고요.

저를 또 한 번 놀라게 한 것은 장조림입니다. 직접 만들어 아주 잘게 손으로 찢어내셨더라고요. 멸치볶음도 아주 가는 멸치를 부드럽게 볶아냈고요. 그러고 보니 모든 반찬이 잘 씹지 못하는 사람도 씹기 좋게끔, 소화도 잘 되게끔, 그리고 하나하나 주인장의 정성이 묻어나게끔 만들었습니다. 마치 집 밥처럼, 아니 집 밥보다 더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가정식 반찬들이었어요.

친구가 주문한 잣죽(9,000원)입니다. 찹쌀풀에 곱게 간 잣을 섞어 만든 듯했어요. 첫맛은 고소하니 맛있었는데, 다 먹은 친구가 좀 느끼하다고 그러네요. 그도 그럴 것이 친구는 아예 씹지를 못해서 다른 반찬을 하나도 먹지 못했거든요. 간신히 동치미 국물만 먹었지... 저 반찬을 맛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네요. 그래도 음식을 아예 못 씹는 것치고 그나마 잘 먹은 편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죽의 밥알도 못 씹는 상태였으니까요.

제가 주문한 팥죽(9,000원)입니다. 색은 진하지만, 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슴슴한 맛이었습니다. 뭔가 건강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팥죽 자체만 보면 좀 심심할 수도 있겠지만, 반찬과 함께 먹기에는 좋았습니다. 

찹쌀로 된 새알심도 참 부드럽고 쫀득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참 만족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죽 값이 너무 비싼 게 아닌가 싶었는데, 가격만큼의 정성과 친절함이 느껴져서 더 만족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후식도 주시더라고요. 한방차와 과일즙이라고 합니다. 한방차를 먼저 먹고 과일즙을 먹으라고 당부하시더라고요. 한방차는 쌍화탕에서 단맛을 뺀 듯한 맛이었어요. 저는 원래 한약도 꼴깍꼴깍 맛있게 먹는 타입이라 맛있게 먹었는데, 친구는 조금 힘들어 하더라고요. 다행히 우유에 사과 등 과일즙을 섞은 차를 마셔 입가심을 할 수 있었지요.

앞으로는 죽 생각이 날 때면 이 집을 떠올릴 것 같아요. 어르신들도 많이 찾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소문을 듣고 찾는 집이라고 합니다.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에서는 정성과 한결같음이 느껴져서 좋았고요.

광화문 역 1번이나 8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대각선 건너편으로 쉽게 빌딩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덧글

  • 리에르 2012/02/27 17:02 #

    저도 위 앓을때마다 몇번 먹었던 곳이네요. 여긴 이름을 딴 초원죽이 유명한데, 맛이 있어도 죽은 죽이죠ㅠ
    어서 나으셔서 함께 맛난 음식 많이 드세요 :)
  • 미친공주 2012/02/27 17:54 #

    ㅎㅎ 벌써 잘 먹고 다닙니다 ^^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ㅎㅎ
  • 카이º 2012/02/27 22:37 #

    죽 하나에도 여러 반찬이 푸짐하게 나오는건 좋군요!
    값이 나가는 거 같은 느낌이긴 해도 괜찮은거 같아요..
    다만 전 팥죽은 쌀알이 없는게 좋은데 좀 아쉬워요 ㅠㅠ
  • 미친공주 2012/02/28 09:49 #

    단팥죽 같은거 좋아하시나봐요? 갑자기 삼청동 단팥죽이 몹시 그립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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