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시작하기 몇 년 전 이미 출간 된 김별아 씨의 '미실'이라는 소설이 당시 많은 관심을 끌었었지만, 미처 읽지 못하고 지나쳤었습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의 약간 실망스럽다는 평이 있기도 했었고요. 괜히 드라마 속에서 좋았던 미실의 이미지를 깨어버리고 싶지 않았었죠. 그리고 이제서야 그 미실을 언급하는 이유는 올해 출간된 무삭제 개정판 책 때문입니다. 참 일찍도 만났네요 ^^;;
새로 출간된 미실은 단순한 개정판이 아니라 초판 당시 분량 문제로 덜어낸 원고지 150매 분량의 원고와 120여 개의 각주를 되살린 소설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이 책이 매우 야하다고 하는데, 사실 성애 묘사가 그리 적나라한 편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최근 들어 많은 소설이 적극적인 성애 묘사로 이슈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이 책이 야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평소 상상하지 못했던 개념들, 즉 '컬쳐 쇼크' 탓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남자와 관계를 갖는 여성을 '몸을 파는 여성'으로 비하하는 요즘의 개념으로는 왕을 보필하는 '색공지신'이라는 말조차 생소하기 짝이 없거든요.
게다가 왕을 보필하는 후궁이라면 다른 남자들과는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통상적인 생각(조선왕조 시대의 묘사에 익숙한 탓이겠지만)과 달리 남편은 따로 있으면서 왕도 모실 수 있거나, 그 왕을 3대를 이어 모실 수 있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쇼킹하지요. 단지 미실만이 그러한 여성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풍토로 봐서는 형이 죽으면 형수와 결혼을 한다거나, 사촌끼리 혼인이나 사통을 하는 일도 매우 흔하게 묘사됩니다. 그러니 처음 미실이라는 책을 접하는 이들은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난잡하다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고, 썩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러나 드라마를 통해 미실이 세종이라는 남편이 있었고, 설원랑과도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으며, 진흥왕과도 묘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읽는 '미실'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저 드라마의 포스터의 글귀조차 거슬리네요. 소설 속의 미실은 왕후의 자리를 탐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그 이상을 가졌었죠. 왕후의 자리란 오히려 미실이 가진 것에 비하면 더 모자란 자리처럼 느껴지지요. 왕의 마음도 가졌고, 화랑들을 주무르는 권력을 가졌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가졌고, 죽음까지 대신할 남자의 사랑까지 가졌으니 뭐가 부족하겠습니까?
그냥 그 시대의 문화와 그녀가 처한 위치에서 '난잡'하게 보이는 관계들에 대한 설득력을 얻고 나면, 그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녀가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뜨거우며, 사람을 외면할 때 얼마나 서릿발 같이 차가워지는지, 세상 만물의 이치에 대해 얼마나 해탈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 뿐이지요. 아마도 삭제되었다는 각주와 원고 분량들이 채워짐으로써 더욱 미실이 가진 복잡한 관계에 대한 이해, 소설 속 대사들이 설득력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드라마 속에서 감동적이었던 설원랑의 사랑은 소설 속에서도 끝까지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드라마 속에서 보지 못했던 세종의 사랑도 눈에 들어오지요. 형편없이 그려졌던 설원랑과의 아들 보종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화려한 꽃 한 송이가 봉오리를 맺고 화사하게 피어났다가 시들어가는 모습을 본 듯한 느낌이 들지요. 김별아 씨의 다른 책 '채홍'은 좀 실망스러웠지만 '미실'은 한 여인을 새롭게 조명한 흥미로운 역사 소설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미실, 여전히 매력적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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