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흩날리는 밤의 첫사랑 '버스커버스커1집' 100번 리플레이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식상해지기까지 한 오디션 프로그램들.. 새로운 가수들을 발굴하는 시작점이 아닌, 오디션 기간에만 반짝스타로 끝나게 만드는 시스템에 회의를 느끼는 요즘. 한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밴드가 조용히 봄날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앨범이 발매된 지 벌써 5일째이지만 실시간 차트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인기, 게다가 앨범에 실린 전 수록곡이 모두 사랑받고 있는 소위 '초대박'을 터트린 그룹 '버스커버스커'입니다. 고음 경쟁이 되어버린 오디션에서 홀로 고음불가로 저평가를 받기도 했었던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슈퍼스타K3에서 버스커버스커의 팬이 되어버린 저는 손꼽아 그들의 앨범을 기다려왔답니다. 그 기다림의 근거는 인터넷에서 찾아 들은 장범준 군의 자작곡들 때문이었어요. 저질의 음질로도 가려지지 않는 음악의 매력에 반해버린 저는 제대로 된 앨범을 듣고 싶다는 갈증에 시달렸지요. 그리고 이번 앨범으로도 제 갈증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자작곡 '잘할걸'이라는 노래가 수록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그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이번 앨범의 분위기와는 안 어울리는 곡이었거든요.

또 다른 기다림을 기약하며, 일단 이번 앨범들을 들어봤는데.. 역시 좋습니다. 제가 느꼈던 매력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버스커버스커의 앨범을 소개합니다. 

인트로 음악 '봄바람'을 들으면 저절로 눈이 감깁니다. 이건, 밤입니다. 언뜻 봄날의 햇살 같기도 하지만, 아니에요. 그보다는 살짝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봄밤입니다. 그리고 한 송이, 두 송이 머리 위에 손바닥 위에 무언가 떨어집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반짝거리는 꽃잎들이 하늘하늘 흩날리죠. 아! 벚꽃입니다. 그래서 어둡지 않았군요. 따뜻한 공기가 감도는 봄밤, 벚꽃 길을 함께 걸으면 좋을 사람.. 지금 내 곁에는 없지만 봄날 한껏 피었다 사라지는 벚꽃처럼 존재했던 첫사랑입니다. 이제는 떠올리면 욱신거리는 아픔보다는 미소가 떠오르게 되어버린 첫사랑을 이 앨범을 들으면 만날 수가 있습니다.

첫사랑, 누군가를 보고 처음으로 외로움을 깨닫게 되는 시기. 서툴러서 어쩌질 못하는 마음에 안타까움만 가득했던 그 시절을 이젠 여수 밤바다에서 홀로 떠올립니다. 우리는 함께 벚꽃길을 걸었었죠. 꽃잎이 흩날리면 마음도 함께 울렁였던 그 봄날, 그 사람과 함께 행복한 벚꽃 엔딩을 맞았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의 이상형이었어요. 발톱, 척추, 새끼발톱까지 나를 홀딱 반하게 만들었었죠. 그 행복했던 기억은 나의 외로움 증폭장치입니다. 내가 너무 어렸고 모든 것이 어려웠던 그때로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런 그 사람들 다시 만납니다. 골목길 어귀에서. 노래가 절로 흘러나와요. 함께 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고, 나는 조금 더 다르게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내 혼자만의 생각인가요? 그 사람에게 이미 나는 과거가 되어버린 모양입니다. 그런 그에게 홀로 닿지 않을 전활 거네요. 예전에 그 사람은 내가 꼬셔내면 안된다고 거절한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꽃송이가 피듯 우리 사랑도 피어났었는데.. 사랑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에요. 그저 한 소녀가 향수를 바르고 또 한 소년이 애프터쉐이브를 바르고 만나 서로의 향기를 맡는 아주 단순한 것일 뿐인데, 뭐가 그리 어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전 벚꽃 향기와 함께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을 떠나보내고 맙니다...

아마도 올 봄의 트렌드는 첫사랑과 향수인 것 같아요. 첫사랑을 소재로한 영화와 드라마가 연이어 쏟아져 나와 과거에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지요. 아마도 화려한, 번잡한, 계산적인 요즘 시대에 다들 질리고 지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 트렌드를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 '버스커버스커'의 노래입니다. 버스커버스커가 그 트렌드를 잘 읽어냈다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색깔이 그러합니다. 향수를 자극하는 목소리, 정직하고 은유적인 노래 가사들.. 조미료에 지친 사람들에게 따뜻한 집 밥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음악인 거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꽃송이가'의 가사 일부를 한번 보세요.

배드민턴 치자고 꼬셔, 커피 한 잔 하자고 불러,

동네 한 번 걷자고 꼬셔, 넌 한번도 그래 안된다는 말이 없었지

꽃송이가 꽃송이가 그래그래 피었네

그 꽃 한송이가 그래그래 피었구나

얼마나 아름다운 가사입니까? 두 사람의 만남을 꽃이 피었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마치 학창시절 책갈피 속에 끼워놓은 오래된 싯귀 같은 느낌입니다.

자극적이지 않아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고, 특히 밤중에나 외로울 때 혼자 들으면 옛 추억이 떠오르면서 묘하게 기분 좋아지는 노래들입니다. 그런 매력이 연령대를 떠나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이에요. 한동안 버스커버스커 때문에 첫사랑과의 추억에 흠뻑 빠져있게 될 듯합니다. 빨리 벚꽃이 피었으면 좋겠네요.

아마도 다음 버전은 가을에 어울리는 쓸쓸한 노래들이 아닐까요? 다음 앨범도 기다려집니다. 갑작스러운 인기에 휩쓸리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받는 그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대합니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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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educated fool 2012/04/02 16:56 #

    저도 오랫동안 앨범을 기다려 요새 그들의 노래를 듣고 또 듣고 있는 팬으로... 지금 올려주신 글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다시 학교 캠퍼스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달까요.
    범준군이 자작녹음을 했던 버전들의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 개인적으로 좀더 좋지만... 상업적 앨범임에도 이정도라면 최대한 그 느낌들이 살아있는 프로듀싱인것 같아 감사하게 되더라구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 미친공주 2012/04/03 11:17 #

    넵 ㅎㅎ 그러게요. 옛날 생각 많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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