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 그리고 '거품' 술이야기

힐링캠프에서 박진영이 나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누린 몇 가지 행운 중에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 태어난 것'을 꼽더군요. 그 부분에서 저 역시 격하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新복고라고 불리는 30대~40대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았을까요? 학창시절의 손편지, 삐삐에서 핸드폰을 거쳐 스마트폰에 이르는.. 카세트 테이프에서 씨디 플레이어, mp3 파일에 이르는.. 아날로그적 감성과 디지털적 혜택을 누리는 세대.  

이따금 '어떤 상징물'들이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저를 아날로그 시대로 힘껏 끌어당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주말 저를 그 시대로 데려간 것, 아니 데려간 공간이 있었습니다. 신촌의 '거품'이라는 바입니다. 그저 흔한 맥주바가 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그 시절에 그곳에 존재했던 이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름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도 2000년경이었을 겁니다. 당시에 신촌에는 지금처럼 세계 맥주바들이 즐비하지 않았었습니다. 거품은 일찌감치 세계 맥주를 수입해 판매하고 있던 바 중 하나였죠.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하는 좁다란 공간에 맥주 한 병과 저렴한 쥐포, 나초, 카나페 따위를 시켜놓고 신나는 음악에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작은 바엔 디제이도 있었습니다. 디제이 오빠는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기도 하고 이따금 웃기는 멘트를 날리기도 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늘 7080시절을 풍미했던 외국 그룹들의 좋은 노래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죠.

작은 공간이었지만 직원은 많았습니다. 직원들은 모두 손님과 가까웠고 금방 친해져서 단골들이 많이 생겼었죠. 눈에 익은 단골들에겐 슬쩍 쥐포와 땅콩 서비스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피크 타임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기도 했지요. 그러면 바 안에 시끄러운 음악과 사이키, 스모그를 뿜어 댔습니다. 그걸 즐기는 사람들은 한층 더 신이 났고, 피곤해진 사람들은 자리를 떠서 새로운 손님들 받곤 했었지요.

거품은 그렇게 승승장구해서 신촌에만 거품 1,2,3 홍대며 건대 그 밖의 지역에도 계속 지점들이 생겨났었습니다. 사장님은 멋진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끌고 두건을 쓰고 다니는 분이었죠. 직원들도 뭔가 달랐습니다. 일반 바와 달리 뭔가 체계적인 호봉 체제여서 오래 일하는 직원이 많았고, 직급도 계속 올라갔어요. 직급이 많이 올라간 직원이 새로운 거품을 내거나 비슷한 바를 오픈하는 일도 있었죠. 왜이리 자세히 아냐고요? 거품에 발을 들였다가 단골이 되고, 거기에 빠져들어 알바까지 했던.. 1인이 바로 저였거든요.

신촌에 간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신촌도 여러 지역이 많은데 우연히 거품 앞을 지나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었죠. 지하에 거품1, 지상 4층에 거품2, 그리고 그 중간에 다 세계 맥주바였던 건물이 거품을 제외하고는 죄다 커피집, 치킨집으로 바뀐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그러고보니 신촌의 거리도 온통 밥집과 커피집이 대세를 이루고 있네요. 게다가 술집 안에도 아직 중고등학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바글대고 있었습니다. "애들이 너무 어려!" 새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 실감했지요.

거품 5에 들러서 맥주 한 잔을 했습니다. 여전히 맥주 가격과 안주 가격은 착하네요. 10여년이 흘렀는데도 크게 오르지는 않은듯 합니다. 하긴, 당시에 거품의 맥주 가격은 그리 저렴한 편은 아니었긴 했지요. 상대적으로 지금 신촌이 아닌 다른 지역들이 너무 비싸진 거기도 하겠고요. 

홀의 가운데 자리에 앉았는데, 사방에는 어린애들이 가득했어요. 왁자지껄한 분위기보다 소수의 인원들이, 혹은 데이트 하는 사람들이 조곤조곤 즐기는 분위기였어요. 그러고보니,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기억도 잘 안나네요. 거품은 더이상 거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요, 벌써 10년이 지났는 걸요. '거품'은 역시 당시 그 시대와 그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 사이에서의 기억으로 박제되어 버린 거겠죠. 잊혀져버린 여러 아날로그 아이템들이 그러했듯이.. 괜히 센치해졌던 주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