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궁 없었던 후궁? 차라리 '태후'였더라면.. 조조할인

'후궁, 제왕의 첩'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여러 가지 상상이 가능했었습니다. 모든 여자를 소유할 수 있는 왕과 그런 왕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후궁, 그리고 후궁을 사랑하여 내시가 된 연인에 이르기까지.. 덧붙여 후궁의 세계 속 암투라던가.. 뭔가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얼핏얼핏 봤던 영화 소개들이나 배우들의 홍보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뭔가 에로틱한 치정극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기대했던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야한 걸 기대했는데 안 야했던 건 아니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네요. 영화 내내 많은 노출 장면과 정사신이 나오지만 안 야했습니다. 왜 안야했을까요? 감정이 이입되지 않은 정사신을 보는 제 시선은 그저 '포르노그라피'를 보는 듯한 기분에 더 가까워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인간의 몸이 고깃덩어리처럼 보이는 우울함이랄까요.

*** 스포일러 조금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건 '치정극'이었습니다. '쌍화점' 같은 느낌 말이죠. 쌍화점에서는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흐르는 감정에 꽤 충실하게 몰입을 하여 그들의 정사 장면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죠. 그 감정에 동화가 되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에로틱하게 느껴집니다. 혹은 수많은 정사 장면이 나오는 '색,계'라는 영화 말이에요. 그 영화가 포르노그라피가 아닌 이유는, 그들이 왜 사랑을 나누는지 그리고 사랑을 나누면서 어떻게 감정이 변하는지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궁'에서는 남녀 주인공 사이에 흐르는 감정선들이 뚝뚝 끊어져 몰입을 어렵게 만듭니다. 친절하지도 않고요. 아니, 이 영화의 마케팅은 '노출과 에로틱, 치정극'에 맞춰져 있지만, 영화의 내용은 오히려 그것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차라리 제목이 '태후'였다면 어땠을까요? 태후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왕의 어머니,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정한 권력싸움이 영화의 주 내용이 될 거라고 예상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후궁'이라는 영화는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불친절하고, 비정한 권력싸움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때문에 눈뜨고 보기 어려운 잔인한 장면들도 속속 등장했고요. 나름대로 충격적인, 그러나 실제로 있었을 법한 장면들이 많아 에로틱보다는 호러에 가까운 느낌마저 들었어요.

장장 2시간의 긴 러닝타임 동안,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너무 많았습니다. 이 하나의 영화에서도 스토리가 여러 개 나올 수도 있었을 법합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넘치는 것이 부족함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축약해 보여주려다 보니 감정선은 불친절하게 뚝뚝 끊겨나갑니다. 대강의 큰 스토리의 흐름이나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뭔 줄 알겠긴 하는데, 기억에 남는 건 잔인한 고문 장면들과 벌거벗은 나체뿐이에요. 그러니 잔혹한 영상에 우울한 기분과 누구의 몸매가 어떻더라, 가슴이 어색하더라 하는 배우의 벗은 몸에 대한 갑론을박만 남게 되는 거지요.

물론 스토리를 제외한 영상이나 의상들, 세트 분위기는 정말 기묘하면서도 우아하고 멋있긴 했습니다만.. 아무리 아름답게 영상을 만들어도 뼈대가 되는 스토리의 힘이 부족하면 결국은 외면받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에 본 '돈의 맛'도 이런 느낌이었는데.. 아! 요즘 선택하는 영화마다 실패입니다. 역시 배우나 매스컴의 마케팅에 혹하지 말고 입소문을 충분히 듣고 영화를 선택해야겠어요.  

물론, 요즘처럼 수많은 영화가 쏟아져나오는 때에 '노출' 마케팅이란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단순히 배우가 얼마나 벗었나, 정사씬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보러 극장에 가겠습니까? 그런 것만 보려고 한다면 널리고 널린 것이 포르노그라피인 것을요. 배우의 노출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결국은 극장을 나서면서 배우의 노출과 관련 없이 가슴 속에 뭔가를 남기고 가고 싶은 것이 관객의 마음이 아닐는지요? '은교'도 노출 마케팅에 혹해서 보게 되었지만 남았던 건 '늙음'에 대한 서글픔 공감이었거든요.

'노출'의 늪에 빠진 조여정에게도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방자전 때만 해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는데, 이 영화..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였을까 모르겠습니다. 후우..

이 영화 속에 주목할만한 후궁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조은지가 분한 '금옥'이라는 후궁인데요, 금옥이 보여주는 행동의 변화들이나 과욕을 부리다가 불행을 자초하는 장면들은 꽤 흥미로웠거든요. 또,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내시들의 세계를 잠깐 보여줬던 부분들도 재미있었고요. 차라리 감독이 후궁과 내시를 둘러싼 치정극을 만들었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재밌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여러모로 또 안타까웠던 영화, 후궁은 없었던 '후궁, 제왕의 첩'이었습니다. 배우의 정사신이 궁금한 분 이외에는 관람을 비추합니다.


덧글

  • costzero 2012/06/13 21:23 #

    으읔...쌍화점은 정말 동성간의 정사씬이 너무 역겨웠습니다.
    감독이 게이바라도 좀 가보던가 아니면 아이다호라도 좀 보고 촬영을 하시지.
    진짜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연기라도 양측이 역활을 정해서 플레이를 했어야 하는데 마치 3일 굶은 사람들이 서로 몸에 꿀을 바른 후에 그걸 빨아먹는 역겨운 느낌이 들어서요.

    대충할 거면 그냥 짧고 굵게 강렬한 이미지만 남길 것이지.대낮에 가까운 조명에 두명의 식스팩들이 서로 햛아대니 영화가 완전 멘붕...
    팬서비스 이려나...나이들면 섹스씬 보다는 인물의 심리상태가 변해가는게 더 재밌는데.ㅎㅎㅎ
    왕이 못건드리는 후궁이면 뭐 아버지 후궁인데 숙빈 이상 받았나 보군요.
    대충 광해군과 선조의 무슨 빈인지 뭔지가 생각나에요.
    조선조에 생각나는 유사 스토리는 그것 뿐이라.
    것도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라서 여자가 남자를 혹은 남자가 여자를 서로 이용한 걸로 나오지만요.
    야사처럼 잡채라도 먹여서 뇌졸증 악화로 사망하게 하려나.
  • Megane 2012/06/16 19:51 #

    한국영화 참...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니까요.
    스크린 쿼터고 뭐고 재미있는 걸 좀 보고 싶은데....... ㅠㅠ
    배틀쉽은 실망...
    그리고 영웅들 돈 주고 한 데 모아서 뭐시기 한 영화도 그저 그렇고...
    요즘 본 영화는 많은데 좋은 영화가 없어요.
    그리고 남들한테 없는 거 달린 것도 아닌데 너무 노출로만 몰고 가는 것도 좀 그렇고...
    프로메테우스는 아직 안 봤습니다만...
    기대 안 하고 보는 게 제일 무난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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