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위력 직접 실감했던 몇몇 순간들 잡담

태풍 볼라벤(Bolaven)이 내일 북상을 한다고 합니다. 태풍이라고 해봤자 비 좀 오겠거니 했던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든 건 서울의 유치원 및 초·중·고에 내려진 임시 휴교령 때문입니다. 사실 직접 자연 재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위력에 대해 감히 상상을 하지 못합니다. 한번이라도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속수무책으로 벌어지는 그 재앙에 손쓸 도리 없이 당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죠. 아마 겪어본 사람들은 지금 더 발빠르게 태풍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을겁니다.

저를 비롯한 주변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은 그저 술렁이고만 있습니다. 과연 그 정도일까? 얼마나 심각할까,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탓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어디에 어느 정도의 피해가 올 것이다 예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뭔가 준비를 하는 것이 오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도 인터넷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정말 창문마다 신문지라도 붙여야 하는 거냐,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온 가족이 코웃음을 치더라"는 식의 문의 글들이 쇄도하고 있지요.

특히 해안가가 아닌 서울 도심에 있는 가정일수록 '설마 서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서울인지 지방인지 가려가며 오는 건 아니잖아요? 이렇게 방심해도 되는 건가.. 하염없이 불안한 생각이 드는 건 제 개인적인 간접 경험 탓일 겁니다.  

저는 필리핀에서 1년 반여를 거주했던 경험도 있고, 또 뻔질나게 여행으로 드나든 경험도 있습니다. 다행히 거주 당시에는 그렇게 큰 태풍을 만나본 적은 없었어요. 2006년도 가을이었나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마닐라 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공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도심이 온통 암흑이었습니다. 물론 필리핀은 전력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나라라 평소에도 우리나라처럼 환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도 너무 어두웠어요.

당시 마닐라에서 1박을 하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어있던 스케줄 때문에 호텔에서 하룻밤을 숙박해야했답니다. 저희는 호텔과 식당이 꽤 많이 모여있는 거리에서 내렸죠. 그런데 그 거리도 캄캄했습니다. 호텔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미리 찜해놓은 호텔이 있어 찾아갔는데 프론트에서 우릴 맞은 건 촛불이었습니다. 저희가 오기 바로 전날 태풍이 마닐라를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온 도시에 정전 사태가 발생한 거죠. 호텔에서 묵을 수는 있지만 전기가 들어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호텔에서 잠만 자면 되는게 아니냐고요? 아마 올 여름을 겪어본 모든 분들은 공감할 겁니다. 에어컨이 없는 습하고 더운 곳에서 버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요. 결국 우리는 에어컨이 들어오는 조그마한 가게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거기도 에어컨만 틀어놓고 테이블은 촛불만 켜놓았지만 그래도 버틸만 했어요. 서너시간 후에 새벽 비행기를 타면 됐으니까요. 꽤 기막힌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은 아니었지요.

한 2년 뒤던가.. 또 마닐라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이번에는 도시가 어두컴컴한 건 아니었는데 환해서 더욱 무서웠답니다. 온 거리가 넘어진 야자수로 뒤덮여 있었거든요. 골목도 아닌 8차선 대로가 난장판이었습니다. 바람이 엄청 센 태풍이 지나간 모양이었습니다. 야자수가 뿌리채 뽑히기가.. 그리 쉬울 것 같진 않잖아요?

이번에는 필리핀 때 만났던 친구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네 집을 찾아갔는데 집에 들어선 순간 뭔가 허전한 겁니다. 그리고는 친구가 조그마한 방으로 안내하더군요. 그 방에 그 집 룸메이트들이 옹기종기 다 모여있더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거실에 유리창이 없더라고요. 태풍에 유리창이 날라가 버렸답니다. 허걱. 정말 기막힐 노릇이죠. 실제로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더라고요.

뚫린 유리창으로 더위도 더위지만 모기의 어택 때문에 방 하나에 문을 닫아 걸고 모여서 생활 중이었습니다. 다행히 전기는 돌아가고 에어컨은 나왔지만 고층 오피스텔의 뻥뚫린 베란다는 정말 무시무시하더군요. 그리고 꼭 태풍이 지난 다음 날 여행 날짜를 잡는 기막힌 타이밍에 감탄을 했었죠.

태풍을 자주 겪는 필리핀 친구나 외국 친구들한테 태풍이 온다고 이야기를 하니,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초와 라이터가 어디 있는지 미리 확인을 해놓으랍니다. 정전이 되면 핸드폰 불빛으로 찾는다고 해도 어디에 뒀는지 위치를 모르면 매번 고생을 한다고요. (실제로 오키나와에서 볼라벤으로 인해 6만여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답니다) 그리고 식량도 미리 구비를 좀 해놓으랍니다. "에이,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야"라고 대답은 했지만, 자연 재해를 재난을 미리 겪어본 사람들의 자세는 확실히 다른 건 분명하더라고요.

모든 사건 사고는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는 방심에서 비롯된다고 해요. 너무 마음 놓지 마시고 뉴스에도 귀를 잘 기울이시고 준비도 잘 하셔서 무사히 태풍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