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사랑이 존재하냐고 되묻는 '천 번째 남자' TV이야기

평소 시트콤을 즐겨보는 성향은 아닌데, 우연히 알게 된 시트콤에 눈길이 갔습니다. 1000개의 간을 먹어야 사람이 된다는 구미호에 관한 시트콤이라고 해서요. 지금 3회 정도까지 했는데 은근한 묘미가 있습니다. 물론 이치를 따지고 보자면 앞뒤가 맞지도 않고, 짜임새가 촘촘하다거나 그렇진 않은데 시트콤인 걸 감안하고 소재의 흥미로움을 부각해서 본다면 나름 괜찮은 '천 번째 남자'입니다.

이 시트콤에 등장하는 구미호는 천 년간 1000명의 간을 먹어야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인공 구미진(강예원)의 엄마와 동생도 그렇게 인간이 되었죠. 그런데 천 년을 3개월 앞둔 구미진은 묘한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간만을 먹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요. 그 덕에 엄마와 동생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천 년간 999명의 진심어린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인데. 완전 부러운 거 아닌가요!! 일생에 단 한 명으로부터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기 힘든 세상인데 이 구미호는 1년에 한명 꼴로는 사랑을 받아왔다는 이야기잖아요. 뭐.. 그렇게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여기저기 구멍은 많으니 '그렇다 치고' 넘어 갑니다. (뭐.. 구미호는 묘하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지, 이 집안의 여자들은 사랑을 받는데 선수이긴 합니다)

김응석(이천희)는 서경석과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희안한 레스토랑이에요. 'LAST'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인데 테이블도 단 하나, 예약 손님만 받으며 그 또한 심각한 사연이 있는 손님만 받는 레스토랑입니다. 이것도 말이 되지 않죠. 만약 이런 레스토랑이 존재한다면 가겟세에 인건비에 재료비까지.. 한끼 식사를 대체 얼마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시트콤이니 판타지적으로 가능하다 치고요. 아마 김응석이 이런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유는 본인이 이미 시한부 인생을 살기 때문일 겁니다. 시트콤에서 그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몇 번 등장했거든요.

어찌됐건 김응석은 구미진이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알아버렸습니다. 시한부는 시한부이지요. 3개월 안에 간을 먹지 않으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되니까요. 그래서 구미진은 자신을 사랑해 줄 남자를 찾아 별의별 남자를 다 만나려고 하고, 김응석은 죽기 전에 할 일이 남자 만나는 일 뿐이냐고 애를 태우죠.  

매회 구미진과 썸씽이 생기는 남자들이 등장하는 것이 이 시트콤의 패턴으로 보입니다. 자살을 하려는 남자가 등장하면 어짜피 죽으려 했던 사람이니 이 사람을 이용해보자 하는 식으로요. 그저그런 시트콤일 수 있었는데 지난 3회차에서 확 마음이 끌려버렸답니다. 어떤 에피소드였냐면요...

어떤 중년 남자가 구미진을 알아봅니다. "미진이? 아니.. 그럴리가 없지"라고요. 알고보니 그 남자의 첫사랑이 구미진이었네요. 구미호니까 나이를 먹지 않고 그 상태로 천 년을 살아왔으니 가능한 에피소드입니다. 파릇파릇했던 한 청년이 외로운 기러기 아빠로 늙어 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미진이의 애틋한 마음이나.. 그 시절 그 때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오해들. 그리고 그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1000번째의 남자로 만들려는 구미진의 마음까지.. 요즘 유행(?)하는 첫사랑의 코드를 '구미호'라는 소재와 교묘하게 엮는,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에피소드였죠. 그래서 계속 보고 싶어졌고요.  

그런데 이 시트콤에서 가볍게 터치해 나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되묻고 있더라고요. "이 시대에 사랑이 존재하긴 하냐"고요. 말로는 너무 쉽게 "사랑해"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에게 조금만 불리하거나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는 사람들. 누군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넌 정말 세상물정을 모르는거야, 지나치게 감상적인거야" 타박을 하게 되는.. 사랑'타령'을 할만큼 한가하냐고 무시받게 되어버린 '사랑'.

그렇지만 인간이란 본디 사랑을 하고 받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동물이 아니던가요? 혼자이고 싶어서, 혼자이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까요. '사랑'에 겁먹고 '사랑'을 무시하면서 소위 말하는 '쿨'하게 제멋대로 사는 인생이 주는 행복의 수치는 어느 만큼일까요?  아마도 요즘 사람들이 '첫사랑'에 열광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겠죠. 아무것도 재지 않고 따지지도 않고 감정에 충실했던 시절, 돌아가기 힘든 그때에 대한 열망. 현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간지럽지만,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왠지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들고요. 그냥 '사랑'하나만을 용감하게 테마로 들고 나온 이 시트콤에 왠지 정이 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매주 금요일 밤 10시 MBC에서 방송됩니다.


덧글

  • Megane 2012/09/07 17:38 #

    우리집은 가족들이 전부 사극을 보기 때문에 DMB시청을 하고 싶지만 그나마 안쪽에 짱박혀 있는 방에서 지내는 고로 못 보고 있다는...
    저도 3회는 본 것 같은데 은근히 매력적인 소재라서 보고 싶네요.
    게다고 공주님 해설덕에 더 보고 싶어집니다. 아무래도 집바깥 공원에서라도 시청해야 할 거 같아요.
  • 미친공주 2012/09/07 17:53 #

    헉... 뭐 그렇게까지.. ^^ 가족이 있으면 TV 쟁탈전이 만만찮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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