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말년을 이런 호텔에서 보내게 된다면? 조조할인

대략 여든 정도가 되었다고 가정해 봅니다. 저는 어떻게 늙어 있을까요? 사람마다의 삶이 다르듯, 수많은 선택 끝에 다다른 인생의 말년도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겁니다. 열심히 일만 해서 꽤 부유하더라도 당장 옆에서 내 아픈 몸 하나 돌봐주는 이가 없을 수도 있고, 평생을 함께 해온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겠죠. 평생 성격이 안맞는 배우자와도 그저 인내와 성실함으로 살아왔을 수도 있고, 손벌리는 자식들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아직도 뜨거운 사랑을 꿈꾸고 있을 수도 있겠죠. 혹은 아주 오래전 옛 사랑을 죽기 전에 한 번쯤 만나고 싶어할 지도 모르고요.  

인도의 어느 마을, 다 쓰러져가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에 이런 다양한 군상들이 모였습니다. 물론 다들 호텔의 과장 광고에 속아 오게 된 것이지만 영국에서의 모든 생활터전을 정리하고 온 이상 바로 되돌아 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는 금방 인도와 인도만의 방식에 적응해 새로운 희망을 봅니다. 어떤 이는 평생 지어왔던 마음의 짐을 이곳에서 내려놓지요. 그런가하면 어떤 이는 끝까지 이 지옥같은 곳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스토리지요.

이것과 더불어 인도 고유의 가족과 계급,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곁들여집니다. 뭐.. 개인적으로는 호텔 매니저 '소니'의 가족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며, 엄마가 반대하는 여자라는 신파적 요소가 썩 마음에 와닿진 않았죠. 영화에서 겉돌고 있는 느낌이랄까, 지극히 뻔하다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따지면 이 영화는 그리 새롭거나 놀라운 영화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뭔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젊고 예쁜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닌데도 그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 전혀 불편하거나 어렵지 않죠. 사랑을 시작하는 방식도 그렇습니다. 열정적이거나 강렬하거나 운명적이라기보다 편안하고 일상적이면서도 정감이 갑니다. 나도 모르게 지긋이 미소를 짓게 만들죠. 물론 이별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격정적인 것이 아니라 슬픔을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냅니다.

대사가 많고 스토리가 복잡한 영화도 아닙니다. 그냥 배우들의 표정에서 몸짓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우아한 연륜 같은 것이 있지요. 은은한 향이 나는 차를 마시는 기분? 그저 '멋있는 배우들'이라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영화 속에서도 배우들의 객관적 외모의 차이는 거의 느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농담에 이쁜 여자나, 못생긴 여자나 나이들면 다 똑같이 평준화 된다고 하는 말이 맞는 말 같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소녀처럼 예뻐보이기도 하고 심술궃은 마귀할멈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결국 영화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늙을까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내 외모는, 내 행동은, 내 사고방식은 어떻게 늙어갈까. 특히 영화 속에 나왔던 사람 중 하나처럼 내가 인정해왔던 것 이외의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은 옹고집 불만꾼 노인이 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나기도 했고요.

인생이 다 그렇잖아요? 나는 이런 엄마는 절대 되지 말아야지 했던 사람들이 그런 엄마가 되어가고 있고, 나는 엄마처럼 아빠를 대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똑같은 길을 걷기도 하고요. 나이 먹으면 편협해지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 나이가 되니 나도 모르게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요즘 어린 것들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절대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정말 보기 싫고 상대하기 싫은 노인으로 늙으면 어떡하나 싶더라고요.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쌓여서 일흔 살의 나, 여든 살의 내가 만들어지는 거겠지요? 가끔씩 인생을 놓아버리고 싶거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살고 싶어질 때 먼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조금은 나를 가다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떠냐구요? '따뜻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관람 가능합니다. ^^


덧글

  • 지나가는 저격수 2012/09/11 20:22 #

    엥? M 이 은퇴해서 가셨나?
  • 차원이동자 2012/09/11 20:23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그 댓글 달려고 했는데!
  • 미친공주 2012/09/12 10:07 #

    ???
  • 비맞는고양이 2012/09/12 11:29 #

    ㅋㅋㅋ 그댓글 놓친사람이 많네요 ㅜ
  • 비맞는고양이 2012/09/12 11:30 #

    미친공주님// 007 시리즈의 M역할로 나오시는 분이셔요~ 백발의 숏컷 할무니
  • 미친공주 2012/09/12 13:45 #

    아.... ㅋㅋㅋ
  • 차원이동자 2012/09/11 20:24 #

    인도를 배경으로(혹은 인도분위기가나는) 영화들이 대거 나오고 있네요. 이 영화도 기대해봐야겠군요
  • 미친공주 2012/09/12 10:08 #

    이 영화는 인도에 대한 내용은 일부만 나와서 인도가 썩 매력적으로 그려지진 않고 있긴 합니다. ㅎㅎ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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