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추억 상자 속에서 꺼낸 '위대한 유산' 바람이야기

그런 때가 있습니다. 몇 년에 한 번, 온갖 잡동사니를 넣어 둔 추억 박스를 꺼내서 열어보고 싶은 때가요. 그 속에는 묵혀둔 사진과 일기들, 편지들이 한가득 들어있을 겁니다.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자질구레한 물건들도요. 비유를 하자면 그 틈에서 오래 묵은 영화 한 편을 꺼내어 본 셈입니다. 에단 호크와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위대한 유산 /1998년작'입니다.

* 오래된 영화라 스포일러 막 뿌립니다.

거의 15년 가까이 된 영화이니 정말 오래 되긴 오래된 영화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영화의 줄거리도 내용도 거의 잊혀지다시피 하고 인상적인 몇 장면만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분수에서 어린 시절의 주인공들이 첫키스를 하는 장면, 그리고 성인인 에단호크(핀)와 기네스 펠트로(에스텔라)가 다시 분수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이지요. 너무나 예뻐서 뇌리에 깊이 남았는데, 그 덕분에 이 영화의 내용이 어린시절 서로에게 풋사랑을 느꼈던 두 사람이 성인이 되어 그 사랑을 이루는 내용이라고 오해하고 있었지요. 

물론 어떤 부분은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그렇게 단정짓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인 내용들이 많더라고요. 지금 다시 봐도 이렇게 어려운데 고교생에 불과했던 제가 이 영화를 온전하게 이해를 할 수 있긴 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 에스텔라라는 여주인공을 요샛말로 바꾸면 '어장관리녀'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핀이라는 남주인공은 '우쭈남'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고요.

어장관리녀 : 한 이성에게 마음을 두지 못하고 다수의 남성들에게 시간차 미끼를 던져서 동시에 여러 이성이 자신의 주위를 맴돌도록 만드는 남자 양식업 1급 자격증 소지자를 통칭함

우쭈남 : 우물쭈물 하는 남자. 마음이 있는 거 티는 내면서 정작 들이대지는 않는 남자.

근방 최고 명문가 딘스무어 여사의 조카 에스텔라는 부모도 없이 가난한 어촌에서 자라는 핀에게는 그야말로 동경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사랑의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딘스무어 여사는 핀이 에스텔라에게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에 대한 복수심의 일종의 대리만족을 했던 거고요. 그리고 그녀가 예고했던 대로, 핀의 마음은 에스텔라로 인해 여러번 산산히 부서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가 아닌 성장에 관한 영화더라고요. 한 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실연이란 필수적인 요소지요.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원작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핍이라는 주인공의 성장기에 더 촛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요. 그리고 누나가 버리고 간 핍을 키우는 조에 대한 내용이 더 상세하게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소설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어찌보면 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사랑 이야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해합니다. 그래서 얼핏 뒤틀린 사랑 이야기인 것처럼 오해하게 되지요. 그래서 어린 시절 사형수를 만나는 구해주는 장면이 생뚱하게 튀고, 그가 핀의 후원자일 거라는 예상을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소설에 비해 부족한 스토리적 아쉬움을 모두 상쇄하는 것이 바로 '그림'입니다.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그리고 영화여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소재인 그림. 핀은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을 후원하는 사람으로 인해 성공하게 되는데요. 이 영화 속에 나왔던 모든 그림들은 몹시 개성적이고 인상적인데, 실제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클레멘테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예술가로써의 핀의 사랑, 열정이 이 그림들로 인해 설득력을 얻게 되지요.  

어쨌든 15년이나 지났는데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러운 느낌이 없더라고요. 줄거리도 거의 잊어서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듯 보았고, 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답니다. 하지만 15년 전보다는 조금 더 에스텔라를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건 소설을 보면 깨닫게 될까요?

아마 이 영화를 다시 추억 상자에서 꺼내볼 일은 앞으로 15년 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보면 또 다른 무언가가 제 마음을 울리겠지요. 추억과의 조우를 마치고 고이 다시 상자에 넣어둡니다.  

ps: 이때가 기네스 펠트로의 리즈시절입니다. 아.. 진짜 이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예쁜 여자라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다 용서가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막 솟아오르는게... ㅜㅜ

ps2: 올해 위대한 유산이 다시 영화로 개봉할 예정인가 봅니다. 이 작품이 과연 전작의 느낌, 그 이상일까요? 어떨까요? 기대반 우려반입니다.



덧글

  • 레이시님 2012/12/04 09:29 #

    고등학교때 영화 잡지에서 기네스 팰트로가 녹색 브라우스 입고 있던 모습이 예뻐서 다이어리에 부쳐놨던 기억이 나요.
    그때 이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였었는데 저희 동네 비디오가게가 좀 엄격해서(?) 안빌려줘서 나중에 20살 되면 봐야지 했었는데 결국 끝내 못보고 영화 포스터를 우연히 보게 되면 위 기억이 자연스레 떠오르더라구요 ㅎㅎ
    저때가 브래드피트랑 헤어졌을땐가 그랬던걸로 기억하는데..정말 예뻤었어요. 영화를 안봐서 댓글이 이모냥인데..그냥 막 반가워서 댓글 남겨요ㅋㅋ
  • 미친공주 2012/12/04 10:01 #

    아 진짜 저 초록색 브라우스 너무 예뻤다는.. ㅠ
    그야말로 여신이었죠 ㅎㅎ 19금인데 전 어케 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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