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란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서 독립하는 것 TV이야기

해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아마 30대의 미혼 남녀들은 주변의 우려섞인 눈빛과 질문을 한층 더 많이 받게 될 겁니다. 대체 결혼은 언제 하냐는 질문이지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40대의 미혼 남녀에게는 그런 질문조차 섣불리 하지 못한다고 하니까요. 네네.. 올해도 안부 묻지 말아달라는 선제 공격인 셈입니다. 흐흐..
뭐, 이것저것 생각이 많던 차에 공감할 만한 좋은 드라마 하나를 만났습니다. 공중파는 아니고요 JTBC에서 방송된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란 드라마입니다. 아마 자식 결혼을 목전에 두거나 겪었던 부모들과, 또 결혼을 앞두거나 겪은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였을 겁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결혼을 하기 전에, 또 결혼을 시키기 전에 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바람직한 결혼 문화를 위해서요.

정훈은 3년간 사귄 여자친구 혜윤에게 결혼을 앞두고 프로포즈를 합니다. 프로포즈를 하는 건 남자지만, 사실 그 프로포즈를 유도한 건 혜윤입니다. 혜윤이 결혼이 하고 싶어졌거든요. 그 부분에서부터 백배 공감이 갑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커플들이 여자가 원해서 결혼 준비를 시작하게 되곤 하지요. 여태까지의 드라마가 만남에서 연애, 그리고 결혼식을 해피엔딩인 것처럼 그려왔다면, 이 드라마는 결혼을 위한 준비에서부터 사건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양가에 인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난관들이 시작되지요. 연애 할 때야 두 사람만이 전부니 서로에게 맞춰주면 그만이지만, 이제 상대방의 부모님과 가정환경 그리고 내 부모님과 가정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지요. 결혼 선배이기도 한 부모님은 사위가 될 사람, 그리고 며느리가 될 사람의 가정환경이나 경제 상태를 먼저 따지기 시작하게 되고요.

그렇게 사이가 좋던 이 커플도 양쪽 집에 왔다갔다 휘둘리면서 점점 중심을 잃어갑니다. 사람의 입을 건너 건너 전달되는 사실은 왜곡되기 십상이지요. 정훈이가 혜윤이 어머니에게로, 정훈이 어머니가 혜윤이 어머니에게로, 혜윤이가 정훈이 어머니에게로 계속 돌고 돌면서 불려다니고 나누고 하는 이야기들은 점점 꼬여만 갑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돈 문제가 가장 크게 걸려있고요. 흔히 결혼을 준비하면서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 집 마련부터 예단 예물이며 뭐며.. 게다가 아무리 교양있고 너그러운 엄마도 결국 자식 결혼 앞에는 이기적인 얼굴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거겠지요. 결국 결혼 과정에서 이 두 사람은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꽤 리얼합니다. 저도 가까이에서 동생 결혼과 친구들의 결혼 과정을 보아왔고, 저 또한 살짝 발을 담가봤기 때문에 느끼는 거지만... 내가 원하는 것과 부모가 원하는 것의 갭, 그리고 현실과 돈 문제 앞에서 수없이 진통을 겪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가족과 내 부모를 서운하게 만들고, 또 가족과 부모에게 실망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 순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각 집안의 가풍과 추구하는 이상, 경제적인 갭이 크면 클수록 말이죠. 그래서 요즘은 결혼 준비를 하다 깨지는 커플도 수두룩 하다지요.

물론 이 드라마에는 여러 다양한 커플들의 사랑 방식 뿐 아니라 이혼 방식까지도 등장합니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결혼의 형태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어하지요. 메인 커플과 가장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커플이 바로 민호와 들래 커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감초처럼 코믹하게 등장하는 커플인 줄 알았는데, 정말 순탄하고 또 순탄해서 부럽기만 한 커플이더라고요. 그런데 이 커플이 그토록 행복할 수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민호는 벌써 이혼을 2번이나 한 40대 남자입니다. 40대가 되어 재산을 모을만큼 모으고 취미로 바이크를 타지만 외로움은 절절하죠. 20대가 아니면 여자가 아니라고 외치다가 결국 연상인 50살의 들래를 만나게 됩니다. 들래는 50평생 혼자 살아온 독신녀입니다. 무료한 삶을 보내다가 바이크를 타보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민호와도 사랑에 빠지게 되죠. 이 커플은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함께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싶으면 빨리 하고 살고 싶으면 빨리 같이 살자고 하죠. 흔히 결혼할 때 준비해야할 것들이 다 필요가 없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이 안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허례허식에서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지요.

물론 이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이기 때문에 재미 요소나 과장된 부분이 있고, 다양한 결혼 형태에 대한 너그러운 결말로 끝을 맺긴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감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매우 많습니다. 사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꽤 많이 울었습니다. 전혀 신파가 아닌데도요.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는 결혼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나 결혼으로 인해 내 가족에게 상처를 내는 일, 엄마와 딸, 자매와의 관계 등이.. 공감이 너무 많이 가서요. (드라마 속 엄마가 하는 이야기 중에서는 우리 엄마에게 직접 들어본 이야기도 종종 튀어나오더라고요. 큭큭)
알고보니 드라마 작가분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오랫동안 써 왔던 작가분이라고 하네요. 물론 사랑과 전쟁은 좀 과장되거나 극단적이기가 십상이긴 하지만.. 수많은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써오면서 쌓아온 현실에서 얻은 고민들을 이 드라마에 잘 풀어놓지 않았나 싶습니다.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결혼이란 자식이 부모로부터뿐 아니라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기도 하다고요. 우리나라 정서상 부모와 자식이 서로 독립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고, 부모도 자식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은 거죠. 그리고 그 요구의 정점을 찍을 때가 바로 '결혼'이라는 공식적인 행사이고요.
지난 한 해 결혼에 대한 허례허식을 없애자는 캠페인이 꽤 많이 벌어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문화는 쉽사리 바뀌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서로 양쪽 집의 눈치를 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다시 규모가 커지곤 하더라고요. 결혼을 앞둔 부모님과 자식들, 모두 이 드라마를 한 번씩 시청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도 진정 행복한 결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덧글

  • dudadadaV 2013/01/04 15:44 #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얼마 전에 이별을 겪은 사람 여기 있습니다. -_- 저는 결혼 준비 단계도 아니었지만 어쩌다 한 번 두 번 가족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생긴 삐걱거림에서 두손 두발 다 들었네요. 언니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과 제가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과정을 거의 동시에 겪으며 저는 연애와 결혼이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통감하고, 이제부터 나는 남자를 만날 때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가보다 그냥 집에 데려갔을 때 흠잡힐 데 없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연애도 결혼도 다 시시해져버렸습니다. 어차피 결혼이란 결혼할 나이에 만나는 적당한 사람이랑 하는 건데 뭐 이런 거에 목멜 필요 있나 싶기도 하구요. 여러모로 쓸쓸합니다.
  • 미친공주 2013/01/04 17:00 #

    아.. 상처가 크셨나봐요. 음.. 뭐라고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다음 인연은 좀 더 여러모로 편한 분이시길 바래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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