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와 성장, 파괴를 통한 오르가즘 '스토커' 조조할인

박찬욱 감독의 헐리웃 진출작으로 더 이목을 끈 영화 '스토커'. 그저 단순한 스릴러 영화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대신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들에서 찾기 힘든 스타일리시함이 살아있는 영화였습니다. 그저 '박찬욱 답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영화라고나 할까요?

박찬욱의 영화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건, 늘 금기에 대한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고 난 후  절대 유쾌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은근한 카타르시스가 없는 것도 아니에요. 물론, 그의 영화 속에서 한번도 카타르시스를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 또한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감독이니까요. 평소에 박찬욱 스타일을 괜찮게 생각했던 제 시선으로 영화를 평했기 때문에 평소 박찬욱 스타일을 싫어하셨던 분들은 알아서 영화를 피하시길 바랍니다. (영화를 보는데 극장 뒷자리에서 내내 투덜거리던 가족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보지를 말 것이지.. 아니면 중간에 나가던지.. ㅠㅠ 후우)

참고로 줄거리를 많이 아는 것과 이 영화를 즐기는 것과는 크게 연관이 없을 겁니다. 스토리 자체에 집중하는 영화는 아니니까요.

** 스포일러 꽤 있습니다.

이 영화는 포스터 한 장만으로도 대단히 많은 스포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죽고 여자 둘만 남은 집에 등장한 남자, 그런데 심지어 삼촌이라니.. 금기의 선을 넘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상상할 수 있지요. 그리고 영화는 뻔히 그 예측대로 흘러갑니다. 단지 '인디아'라는 소녀의 시점에서 흘러가기 때문에 몇 가지 배경 설명에서 불친절한 부분들이 있긴 하지요.

만일 "왜?"라는 질문을 들어 개연성을 따지고 든다면 어렵지 않게 헛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다시피 이 영화는 스토리에 집중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이것저것 다 잡으려다가 그 무엇도 잡지 못하게 되어버린 영화가 아니라는 말이죠.  

스토커에서 그려지는 엄마와 딸의 관계는 참 미묘합니다. 일반적인 엄마와 딸의 살가운 관계는 절대 아니죠. 그러나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이 다정하지는 않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딸에게 전혀 느껴지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는 겁니다. 단지 많은 엄마들은 딸에게 자신을 투영해 대리만족을 하며 행복해 할 뿐이죠. 남편의 사랑을 온전히 딸에게 뺏겨버린 엄마라면 어떨까요?

스토커 속 엄마 이블린(니콜 키드먼)은 시종일관 드러내놓고 유혹하는 듯한 섹시한 옷차림을 하고 다닙니다. 금방 남편을 잃은 사람 같지 않죠. 인디아는 소녀의 순수함을 표현하는 듯한 원피스를 즐겨 입고 나오다가 어느 순간 엄마와 똑같은 실크 슬리브를 입습니다. 18살,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깨닫는 시점이자 소녀가 여인이 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인디아가 엄마와 삼촌과의 관계를 목격하면서, 그녀는 스스로 안에 자라고 있던 감정들을 깨닫게 됩니다. 질투와 살의, 성욕 그 모든 것이 뒤엉켜 버린 날 밤, 그녀는 '첫 경험'을 하게 되지요. 이것이 스릴러의 장르를 택하지 않았다면 18세 소녀의 일반적인 성장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 안에 자라고 있던 것은 괴물이었죠.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인디아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꽃은 자신의 색을 선택할 수 없어요. 저도 지금 엄마의 블라우스 위에 아빠의 벨트, 삼촌이 사준 구두를 신고 있죠. 내가 무엇이 되든 내 책임이 아니예요."

"just as the flower does not choose its color, we are not responsible for what we have come to be. Only once you realize this you become free and to become adult"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헉! 하는 감탄이 절로 흘러나옵니다. 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아름다워요. 화사한 아름다움이 아닌 묘하게 뒤틀린 아름다움, 그러나 여전히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엔딩곡으로 흘러나오는 노래까지 완벽하게 아름답습니다.

Emily Wells의 'Becomes The Color'라는 노래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을 분들이라도 노래와 영상을 보시면 마치 이 영화를 거진 맛본 듯한 기분이 들 겁니다. 

 노래 감상을 원하는 분들은 이 링크를 따라 가세요~ -> 

다시 당부드리지만 박찬욱 감독 영화를 평소 싫어하셨던 분들이나 스토리 위주의 영화 감상을 즐기시는 분들은 살짝 피해가시길 바랍니다.

ps: 아우.. 저 남자 배우 '매튜 구드'의 눈빛이 너무 소름끼쳐서 다른 영화 어디에 나오더라도 무서울 것 같습니다. 흑흑.


덧글

  • 남선북마 2013/03/04 21:35 #

    엔딩롤이 올라오기전부터 오버랩되던 'Becomes The Color'은 주제곡으로서 근래에 보기드문 임팩트를 주더군요.
    드물게도 가사가 자막으로 보여져서 곡에 몰입되는 정도가 더 했습니다..
  • 에반 2013/03/04 21:36 #

    아흣!!! 저두요!! 어떤 사람은 가사 있어서 별로라고 하던데 전 가사가 보여서 더 임팩트 있었어요!!
  • 미친공주 2013/03/05 09:23 #

    저도 가사에 한표!!

    이 노래는 진짜 갑!
  • bgimian 2013/03/04 23:55 #

    노래 가사가 인디아의 심리상태를 그대로 읊어놓은 것 같아서 놀랐어요.
    가사를 자막으로 처리한 것은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
  • 미친공주 2013/03/05 09:23 #

    너무 잘만든 노래라는.. ^^
  • 까만별 2013/03/05 02:39 #

    묘하게 뒤틀린 아름다움, 딱 그거네요. 영화 보는 내내 감탄하면서 봤어요. 연출이랑 구도 너무 좋더군요.
  • 미친공주 2013/03/05 09:24 #

    네.. 다음 영화가 기대됩니당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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