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르' 조조할인

최근 누군가가 내게 2년 후의 모습은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가 정말 어렵더군요. 그만큼 전 미래가 아닌 현재를, 때로는 과거를 살고 있는 유형의 인간었습니다. 불과 2년 후의 모습도 그리지 못하는 저이기에 내 인생의 마지막 모습 또한 그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보기는 했고, 막연히 이러이러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봤어도 그 어떤 상상도 현실적이지는 못했다고나 할까요?

저는 운이 좋게도 평생 죽음을 가까이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적도, 누군가의 병간호를 해본 적도 없어요. 정말 운이 좋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매일매일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흔한 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은요. 언젠가는 겪기야 하겠지만,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일처럼만 느껴지거든요. 그런 일을 겪어봤다면 이 영화에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스포일러 조금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노년의 사랑을 그려낸 영화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로는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있겠고요, 외국 영화로는 '노트북'이 떠오르네요.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노년이 되어서도 저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지요.

그런데 이 '아무르'라는 영화는 그런 영화들과 노선을 살짝 달리합니다. 몹시 담담하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감동적이긴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저렇게 죽으면 어떡하지?"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죠. 과장되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이 몹시 아프고, 나와 연인, 그리고 내 미래의 모습까지..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덜컥 겁이 납니다. 어느날 갑자기 내 배우자나 연인이 내가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면 그 순간 얼마나 무서울까. 혹은 내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면 그걸 의식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얼마나 싫어질까.

평범한 나날을 보내던 조르주와 안느 부부에게도 그런 일이 생깁니다. 안느가 갑자기 몸의 오른편이 마비되고 그와 함께 서서히 정신도 무너지죠. 아무르라는 영화는 친절한 영화가 아닙니다. 전혀 미화하지 않고 마비를 겪는 아내와 그 수발을 드는 남편의 하루하루를 그려내지요. 한 손과 한 다리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든지 해보려는 안느의 투쟁, 그럼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한 손을 이용해 책을 보는 정도 뿐입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머리를 감고.. 그 모든 것이 조르주의 도움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지요.

음악가 출신으로 소박하면서 고고하게 살아오던 부부에게, 특히 안느에게는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이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아직 닥쳐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나에게 언젠가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냥 편히 죽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가망이 없다면 나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노력이 남겨진 사람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지만 막상 죽음 앞에 섰을 때 그런 판단조차 내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들.. 수만가지의 상념들이 떠올랐다 사라집니다.

그런 아내의 고통을 지켜보는 일이 조르주에게는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지극히 덤덤하게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이 노인을 보면서, 과연 나는 내 배우자에게 내 배우자는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조르주 또한 자신의 몸 하나 주체하기도 어려운 노인인데 안느의 병구완을 하는 일이 쉬울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힘겨운 내색 없이 하루하루를 이겨내는 조르주..

사실 집에 아픈 사람 하나만 있어도 모든 가족의 삶이 달라진다고들 해요. 아프지 않은 가족들도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점점 예민해지고 힘겨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함께 겪지 않는 또 다른 가족이 상처를 주는 일도 있습니다. 왜 이것밖에 못하냐고, 다른 방법은 없냐고. 매일매일 매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는 사람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말인거죠.

이 영화의 제목이 왜 프랑스어로 '사랑'을 뜻하는 '아무르(amour)'일까요? 과연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얼굴의 주름 수만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이고, 그 어떤 하루의 마지막을 온전하게 맡기고 또 맡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이런 게 '사랑'이라면 해보고 싶다.. 모든 결혼의 결말이 이 영화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 마지막은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고, 또 이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연인과 함께 보고 나서 서로에게 계속 묻게 됩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서로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요. 지금 제 또래가 이 영화를 보는 것과, 또 더 세월을 사신 분들이 보는 것과, 노년의 나이에서 보는 느낌이 많이 다르기는 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를 기대하신다면 관람불가입니다. 인생에 관해, 사랑에 관해 배우고 싶다면 한번쯤 볼만한 영화이고요. 템포가 느린 영화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느린 템포처럼 천천히 영화 속 인물에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