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다면 '디 아더 맨' 조조할인

2008년작인데 2013년에 개봉이 되었고, 개봉이 되고도 얼마 되지 않아 소리소문없이 막을 내린 영화라고 한다면 정말 별로인 영화인가보다 할 겁니다. 소재 자체가 워낙 자극적이라 구미가 당기지만 기대했던(?) 자극은 없고, 일반인으로써는 공감하기도 어려워서 호불호가 지극히 갈렸던 영화지요. 바로 '디 아더 맨'이라는 영화입니다.

*** 스포일러 꽤 있습니다.

소프트 업체 사장 피터(리암 니슨)에게는 구두 디자이너인 아내 리사(로라 닌니)와 딸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가정처럼 적당한 문제만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아오던 어느 날, 아내는 암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지요. 그런데 아내의 노트북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진과 이메일을 발견합니다. 아내에게는 다른 남자가 있었던 거죠.  

이런 대강의 줄거리를 보면, 특히나 남자들은 더욱 분개하기 마련일 겁니다. 남친도 마치 자기 일처럼 화를 내더라고요. "아내와 불륜을 저질러왔던 그 남자를 죽여버려야겠다"는 것이 대부분의 남편들이 느끼는 감정일 겁니다. 그래서 피터가 그 남자를 죽여버릴 각오로 찾아 헤매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눈여겨 보게 된 이유는, 이 영화에서는 아내의 불륜이라는 소재를 자극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그것이었다면, 아내와 다른 남자와의 끈적거리는 정사 장면을 더 집어 넣을 수도 있었을 거에요. 그러나 몇 컷의 사진, 몇 줄의 이메일로 남편이 분노에 다다르는 장면만을 보여주죠. 

대신 영화는 아내의 몇 마디의 대사를 담습니다. 남편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 그리고 뜻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이야기들. 아내가 죽고 나서야 아내가 했던 그 이야기들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피터는 괴로와합니다.

피터가 밀라노까지 날아가서 만난 아내의 남자 랄프. 살의를 감추고 랄프에게 접근하는 피터, 그리고 랄프의 입에서 듣는 아내의 이야기에 피터는 치를 떨고 광분을 하죠.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계속 아내의 이야기를 캐묻는 피터에게는 지난 일을 그저 흘려보내자는 딸의 절규도 들리지 않습니다. 

더 이상의 스포일을 하기 싫어서 뒷 이야기는 좀 아껴둡니다. 궁금하죠? 피터는 랄프를 죽였을까, 혹은 랄프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까, 랄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지만 영화가 호응을 얻지 못했던 데는 생각만큼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결말이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나름의 반전 같은 건 있긴 했지만..

이 영화에서 생각해 볼 건 두 가지 입니다. 일단 아내의 심리. 아내가 남편을 사랑했던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끝까지 남편을 선택했죠. 자신의 노트북 비밀번호를 남편에게 알려준 것도 아내였어요. 왜 그랬을까요? 사실 모르는 게 약이었을텐데요. 남편은 영원히 좋은 아내로 기억했을텐데.. 

그런데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고 한다면.. 제가 좀 이상한 건가 모르겠어요. 함께 사는 동안은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지도 못하고 가끔 외롭게도 만들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신실하게 자신을 지켜줬던 남편에 대한 마지막 예의. 그리고 다른 남자와 행복했던 그 순간을 남편과 함께 했더라면.. 하는 후회. 모르겠어요,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각도에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소지가 워낙 많은 영화라서요.

그리고 남편의 입장에서는 내가 몰랐던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내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도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다... 단순히 아내에 대한 배신감, 저런 나쁜 년이라는 손가락질 이전에 나는 내 아내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곱씹어 보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결혼 생활을 오래 해보셨고, 인생을 더 겪어 보셨다면 아마 이들 부부에 대해, 또 피터의 선택에 대해 더 공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뭐.. 아무리 좋게 포장이 되어있던들,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유쾌할래야 유쾌할 수는 없는 영화겠죠? 참고하셔서 보시길 바랍니다. 자극적이거나 흥미 위주의 영화는 절대 아니고 부부와 신뢰, 사랑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니까요.  


덧글

  • 대건 2013/04/01 16:34 #

    남편은 열받겠고, 남편 아닌 애인은 어땠을까 싶네요. ^^
  • 미친공주 2013/04/01 17:50 #

    남편의 애인은 남편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죠 ㅎㅎ
  • 키멜 2013/04/01 22:38 #

    버지니아 울프의 유산이라는 단편소설이 생각나네요 소설 속에서는 노트북 대신 일기였지만 부인이 죽고 남편이 부인의 외도를 알게 된다는게...^^)
  • 미친공주 2013/04/02 09:36 #

    ㅋㅋ 모 그런데서 모티브를 가져온게 아닐까..
  • 미메시스 2016/10/18 14:14 #

    아주 공격적이고 불쾌하게 자극적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웬만한 영화들은 시일을 두고 다시 보곤 하는데...이것은 다시 클릭하게 되지 않더군요.

    무수히 고르다가 선택하고... 자신만큼 존중받아야 할 또 다른 자아와 약속까지한 것이 결혼인데....
    결혼 이후에도 늘 배우자가 아닌 곳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고 다니며 또 다른 선택을 할 여지를 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가치관이 주는 첫 번째 가증스러움과
    본인의 쾌락은 남편을 오랜 기간 동안 속여가며 다 취하고 병수발 등 뒤치닥거리는 남편에게 맡기는...
    게다가 죽을 때까지 자기 입으로는 고백조차 안 하고 끝까지 속이는 또 하나의 가증스러움...

    삶과 존재 자체가 완전히 부정되었을 남편의 고통과 당황스러움에는 미치지 못할 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고통 쯤은 될...
    남편 삶 전체와 그 자아가 아내 회사 사람들이라든가 주변 지인들에게 등신으로 인식될 그런 문제조차 아내의 그 어떤 고민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임에도
    그런 것은 전혀 고려치도 않는 심하게 일그러진 영화의 균형감각 등...
    지극히 자극적이다 못해 아주 공격적인 영화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이고 폭력적인 모욕은
    첫 번째가 살인이고
    두 번째는 장기간 반복하는 거짓말로 배우자의 가치관과 지난 세월, 추억들을 완전히 파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육체적 쾌락을 쫓다 온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삶 전체를 허깨비 삶으로 일순간에 영구히 만들어버리는 것만큼 폭력적이고 교활하고 비열한 짓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세월, 추억, 인간적인 신뢰..모조리 다 파괴하는 것이죠.
    차라리 살인은 덜 비열하고 교활한 것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프랙처에서 보듯 말이지요.

    더 배우자를 격하시키는 점은 존재 자체가 완전히 부정되었는데도 아내의 남자에게 그저 분풀이하는 수준만이 남편이 할 수 있는 전부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내면의 합리화란 코스프레를 뺀 범위로만 놓고 보면요.
    이것이야말로 장기간에 걸친 거짓말과 아울러 많은 세월 동안의 남편의 존재와 자아까지도 짓밟는 지극히 공격적인 인생관이자 남편에 대한 쓰레기같은 매너입니다.

    정말 극히 미세한 일말의 양심이 있었다면...제 가치관으로는
    남편에게 직접 고백하고, 이혼하고, 가난하더라도 그 남자에게 가서 병수발을 부탁해야 최소한 인간의 탈까진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한 때 배우자로 선택하고 결혼서약을 함께 했던 어떤 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매너라는 생각이 듭니다.

    디 아더 맨의 그런 유형의 여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아야 맞다고 생각됩니다.

    불륜을 사랑의 자유와 섞어서 말하는 경향들이 요즘 많고 법 환경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판결들이 속출하지만...
    불륜은 반체제 중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이혼하고 나면 그 누구도 뭐라하지 않을 것을 계속 치밀하게 사전부터 거짓말로 자신이 선택한 배우자를 속이고...
    STD 걸려와 몰래 몰래 애들도 검사시키고 약 먹이는...
    이런 파렴치하고 개같은 짓거리는 범죄마인드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실 가해자는 명예까지도 보호받는 전도된 세상에서 수사관들도 힘들어하는 추적 조사와 증거를 피해자가 대야 하는 환경은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고 ...
    범죄자에게 프라이버시는 웃기는 얘기같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엄마 따라가야 할 지 아빠 따라가야 할 지 결정해야 하는 피해자들의 인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촌수가 제로가 되는 부부 간에는 휴대폰 공유, 이메일 공유가 되지 않으면 혼인신고도 받아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안되면 결혼할 이유도 없고 자세도 안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작금의 모든 가정 파탄 문제의 그 시발점이 무엇인지를 극렬하게 매우 공격적이고 자극적으로 아울러 불균형적인 시각으로 드러낸 영화 중 하나가 바로 디 아더 맨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보기가 불편하든 안 하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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