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장옥정'의 패착은 해품달에서 비롯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드디어 종영을 했습니다. 그동안 조선시대 최고의 팜므파탈로 꼽히던 '장희빈'을 내세워 망했던 드라마는 없었기에 시작할 당시에는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오락가락 종잡기 어려운 스토리와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간신히 망작을 면하는 정도로 종영을 하고 말았죠.

역대 최고의 비주얼인 장옥정을 내세우고도 드라마가 흥할 수 없었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전 '해품달'의 망령이 원인이라고 꼽고 싶습니다. 해를 품은 달, 근래 보기 드문 40프로가 넘는 시청률로 작년 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판타지 사극이었죠. 그렇지만 시청률만큼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흠. 요즘 은밀하게 위대하게 영화 흥행만 보더라도 그때나 지금이나 김수현이라는 배우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배우이기는 하는가 봅니다) 해품달이라는 드라마의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기존의 딱딱한 사극에서 벗어난 판타지 사극의 붐을 일으켰다.. 정도랄까요?

그런데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제작진도 그 해품달 마니아였나봅니다. 드라마 장옥정을 보면서 곳곳에서 해품달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지요. 장옥정과 이순(숙종)이 어린시절 만나 미래를 약속하는 장면. 굳이 스토리 진행상 불필요한 장면이었습니다. 왜 굳이 사랑에 빠지려면 어린시절의 인연이 있어야 하는 건지요? 해품달 같은 경우는 어린시절은 스토리상 꼭 필요한 장면이었고, 그 어린시절의 배우들의 호연으로 초반의 인기를 끌어모았었습니다. 그러나 장옥정에서는 아역들이 그만큼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않았고, 또 굳이 넣을 필요가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장옥정과 이순의 만남은 아역 시절 말고도 수많은 우연의 반복이었거든요. 그 아역시절이 장옥정의 시청률을 급하강 시킨 원인이 되었지요.

이순의 종친인 동평군은 해품달 속 양명대군과 거의 흡사한 캐릭터입니다. 게다가 동평군을 이용한 이순의 기사환국 장면 또한 해품달의 하이라이트에서 그대로 가져온 설정이었지요. 그러니 반전이니 충격이니 보다는 "아.. 어디서 다 본 것 같아"라는 진부한 느낌만 받게 됩니다.

해품달의 망령에 시달리던 제작진은 스토리의 갈길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 하고, 그 때문에 캐릭터는 널을 뛰고 연기자들은 발연기 논란에 휩싸이는 총체적 난국에 시달리죠. 그리고 용두사미의 결말까지..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은 상황에서도 수혜자와 피해자는 탄생하기 마련입니다.

 

최대의 수혜자, 이순 유아인

성균관 스캔들 이후로 드라마, 특히 현대극에서는 영 맥을 못췄던 유아인. 다시 한번 장옥정에서 포텐을 터트립니다. 이 배우는 정말 독특하게도 사극에서 훨씬 존재감이 드러나는 타입. 계속 사극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장옥정이 아닌 '숙종, 사랑에 살다'여야 했을 정도로 시청률의 8할은 유아인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 드라마 자체를 숙종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들었어도 훨씬 나았을 겁니다. 자꾸 숙종에게로 쏠리는 무게감, 그리고 그간의 사극 속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던 숙종에 대한 재발견은 정말 신선했지요. 드라마는 산으로 갔지만, 유아인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되었기에 최대의 수혜자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아픈만큼 성숙한 장옥정 김태희

처음에는 발연기 논란으로 꽤 마음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아직 김태희는 타이틀롤을 맡기에는 연기력이 충분하지 않은 듯 해요. '숙종, 사랑에 살다'라는 타이틀에서의 장희빈 역할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꽤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었고, 그동안 김태희에게서 발견하지 못했던 여러 모습들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장옥정'이란 그녀에게 성공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성장한 드라마로 남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최대의 피해자 최숙빈 한승연, 현치수 재희

둘 중 누구를 더 큰 피해자로 꼽을지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무플이 나은지 악플이 나은지에 대한 선택이랄까요. 한승연은 잘못된 배역 선택으로 욕도 많이 먹고 이미지도 많이 흐려진 케이스입니다. 이걸 보면 악역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죠. 사실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이 첫 사극에서 이 정도 연기를 했다면 선방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물론 시종일관 나는 악역입니다라며 눈과 입꼬리에 힘을 주어 연기하는 한승연이 꽤 안쓰럽긴 했습니다. 워낙 배역이 비호감인지라,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밉상으로 보이는데다 연기력도 받쳐주지 않으니 드라마 전체가 먹을 욕을 홀로 나서서 먹어준 꼴이 되었습니다.

재희 같은 경우는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에는 서브 주인공인 줄 알았다가 드라마가 전개되다보니 조연으로 존재감없이 사라져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쌩뚱맞게 등장해 공감할 수 없는 역할만 하다가 존재감조차 잃고 사라져버렸죠. 아마 장옥정 시작 전에는 꽤 괜찮은 배역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뻔한데, 배우 스스로가 느낄 자괴감도 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쓰럽더군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역사 왜곡 논란이며, 역사에 존재하는 요소들 때문에 제대로 된 스토리를 만들 수 없다면 차라리 장희빈의 모티브만 따온 퓨전 사극을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거 장희빈 이야기 같아"라는 생각은 들지만 완벽하게 역사를 따라 하지 않아도 되는.. 애초에 논란이 존재할 수 없는 설정으로 말이에요. 어디선가 "어짜피 역사 왜곡한 김에 그냥 최숙빈을 죽이고 장희빈과 행복하게 살게 해라"라는 댓글을 봤거든요. 그렇게 할 수 없는 건 ,정해져있는 '역사'가 있기 때문인 거니까요.  

그런면에서 해품달은 자유로왔죠. 결국 그러네요. 해품달에서 빌려와도 괜찮았을 설정은 빌려오지 못하고 쓸데없이 이야기 구조만 빌려와 끼워 놓은 셈이 되었다는.. 이런저런 아쉬움에 원작 소설을 읽어보려 합니다. 최소한 드라마보다는 더 나은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덧글

  • 천악이 2013/06/27 01:14 #

    장희빈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당분간 못 보겠네요. 망해서
    사극은 역시 연기력이 있는 배우가 해야 제맛.
  • 미친공주 2013/06/27 10:01 #

    글게요.. 씁.
  • Megane 2013/06/28 15:08 #

    장희빈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본데다가 다른 드라마들이 활개를 친 덕에 저는 구경도 못 해 본 드라마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지내는 방은 DMB마저 잘 안 잡혀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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