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을 할 줄 아는 '응답하라 1994' 제작진 TV이야기

저만의 드라마 어워드에 1992년 올해의 드라마로 꼽혔던 '응답하라 1997'. 회당 몇 번씩 보았을 정도로 푹 빠져있었던 드라마입니다. 그 드라마 속 주인공의 나이가 제 나이이기도 해서 배경이나 시절이 딱 저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었죠.

단지 추억팔이에만 그쳤다면 적당히 재미있게만 봤겠지만, 이 드라마는 참 교묘한 드라마였습니다. 현실의 탈을 쓴 판타지랄까? 스토리만 보면 한 형제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낮을 것이며, 첫사랑과 결혼을 하는 케이스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심지어 그 형제 중 한사람은 검사, 한사람은 대통령 후보라니 말 다 했지요. 그러나 그런 판타지적인 부분들이 제 마음을 설레게 했던 걸 어쩌겠습니까. 추억과 설렘, 그 모든 것을 자극하는 교묘한 제작진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었지요.

자, 그런데 그 제작진이 응답하라 1994로 돌아왔습니다. 1994년에 대학 초년생이라니 제 시절보다는 조금 더 과거의 일들이라서 1997만큼 공감이 많이 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1994의 배경들을 보면서 공감보다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간신히 짜내야 했거든요. 1994년에 저는 중학생이라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고, 고작해야 서태지 노래 정도가 익숙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 대학가의 하숙 문화 같은 것은 전혀 공감하기 어려운 소재였어요.

그러나 말씀드렸듯이 응답하라 제작진은 그저 추억팔이로만 드라마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판타지를 교묘하게 현실처럼 보여주는 재주에 능하죠. 그것은 1994에서도 유효했고, 또 먹힐 것만 같습니다. 사실 저는 제작진의 밀당에 홀라당 넘어가버린 쉬운 시청자 중 한명입니다.

응답하라 1994의 1화는 정말 재미가 없었습니다. 삼천포의 서울 상경기가 주 소재가 되었던 1화는 뻔한 이야기를 지리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옛 서울의 풍경을 보여주는데 집중되었죠. 또 농구 빠순이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는 세대가 아니어서 그냥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면서 대강 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2화를 위한 작업(?)이었던 것이죠. 개구리가 뛰기 전에 움츠리는 것처럼, 제작진은 1화부터 힘을 주지 않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격은 실제로 먹혔습니다. 1화부터 쓰레기(정우)가 나정(고아라)이의 아주 짜증나는 오빠라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못하고 있었던 저였거든요. 그래서 누워있는 나정이에게 과자 몇 봉지를 사다 던져주는 장면 만으로도 "의외네?"하며 새로운 눈으로 바라봤는데.. 나정의 나레이션에서는 완전 멘붕 상태.

연애의 밀당 스킬 중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 다음에 긍정적인 말을 하면, 오히려 더 긍정적인 말이 진심처럼 강하게 들린다는 스킬이지요. 나쁜 남자처럼 말을 하면서도 다정한 행동을 보여주면 푹 빠지게 된다는 것도 비슷한 원리겠고요. 천하의 백수, 짜증나는 오빠였던 쓰레기가 천재 의대생이자 나정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아껴주고 있는 타인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그러면서 쓰레기를 바라보는 눈에 나도 모르게 하트가...

참 신기한 일이지요. 정우라는 배우가 처음 보자마자 눈이 가는 스타일이 아닌데, 드라마에서의 배역으로 인해 갑자기 멋지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난생 처음 보는 배우였는데... 요즘 말로 '포텐이 터졌다'는 표현일 겁니다. 결국 제작진의 밀당에 굴복해 버린 저는 앞으로 쭉 이 드라마를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정우 이외에도 흥미로운 배우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여주인공 고아라가 눈빛이 너무 연해 현실 같지 않아 보여서 좀 안타깝지만, 최선을 다해 망가져주고 계시고.. 30대 중반의 김성균이라는 배우는 그간의 잔혹한 깡패, 살인자 이미지를 벗어나 정말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해주셨습니다. 연기력에 비해 멋진 역할을 잘 못 맡고 악역이 더 많아 아쉬웠던 유연석이라는 배우는 간만에 여심을 흔들만한 멋진 역할이라고 하니 기대도 되고요. 성동일-이일화의 재 캐스팅의 정말 신의 한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하네요.

매주 금요일, 토요일 밤 9시에 tvN에서 방송됩니다. 본방사수하기에는 조금 힘든 시간대이긴 한데, 그래도 재방송도 있고 하니까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1화부터 천천히 보시길 바랍니다. 확실히 응답하라 시리즈는 1화부터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야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드라마니까요.


덧글

  • Megane 2013/10/25 16:36 #

    제대로 진학 했으면 저도 94학번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중간에 사회생활하다가 다시 공부해서 신학교 00학번이랍니다. ㅋㅋㅋ
    그러고 보니 부교역자 생활만 13년차네요.(벌써? 나도 몰랐는데?)
  • 미친공주 2013/10/25 17:03 #

    헉 ㄷㄷㄷ
  • 鷄르베로스 2013/10/25 21:34 #

    영화 소원에 나왔던 배우가 둘이나 있군요.
    짝패에서는 안길강 어린시절로 나왔었죠.
    그럼에도 기억나는거라곤 그라믄안돼에 뿐이니;;;

    1997도 곰플레이어 무료재방으로 몰아서 봤는데 이번에도 그럴듯 하군요
    보통 저런 남매사이는 나중에 친오빠가 아니라는 막장 설정이 되던데...ㅡㅡ;
  • Megane 2013/10/25 23:23 #

    아~ 앙대~ㅠㅠ
  • みなみ 2013/11/05 15:33 #

    주말동안 몰아서 봤습니다. 선덕여왕 이후러 어랜만에 본방사수하고픈 드라마가 나왔네요. 그리고 성시경의 '너에게'는 원작을 뛰어넘은 리메이크라고 생각해요 ㅎㅎㅎㅎ
  • 미친공주 2013/11/05 15:40 #

    그 노래가 똭! 적재적소에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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