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에서 시작된 사랑의 결말은 어떨까? '비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가 한 편 있습니다. 1회 시청률 5%로 시작해서 수목 드라마 1위를 쟁탈한, 게다가 그 경쟁작이 시크릿 가든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이라는 걸 감안할 때 예상외의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특별한 스타 연기자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독창적인 스토리도 아닙니다. 작가는 유보라, 최호철. 모두 신인 작가들인데, 신인 작가들이 한자 한자 눌러쓰는 대본이라는 농담이 떠돌 정도로 꽤 흡인력 있는 스토리를 자랑하고 있는 드라마 '비밀'입니다.  

저도 하도 소문이 무성해서 뒤늦게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도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제 세상에는 이야기가 될만한 사건들은 다 등장해서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가 없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뻔한 요리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맛을 내느냐가 드라마나 영화 제작자들에게 남겨진 몫이고, 그런 측면에서 비밀은 굉장히 영리한 드라마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제가 비밀을 보지 않으려 했던 건, 뻔한 치정 멜로가 아닐까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성공을 거둔 후, 뒷바라지 하던 여자친구들 냉혹하게 버리는 스토리. 그리고 그 여자가 재벌 남자를 만나 복수를 하는 내용은 언뜻 떠올려도 15년전 '청춘의 덫'을 떠올리게 하죠. 그럼에도 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건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촘촘한 묘사 탓일 겁니다. 

비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죄다 결핍 투성이입니다. 그 부분에서 가장 온전한 건 강유정(황정음)입니다. 아이도 잃고, 아버지를 잃어도, 펑펑 울고 쓰러지고 나서도, 그녀는 다시 꼿꼿하게 일어납니다. 밝게 웃으면서 삶을 견뎌내고 이겨내려고 하죠. 그 뿐 아니라 끝없이 사랑을 퍼줍니다. 사랑에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또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푸는 강유정의 사랑 방식을 보면, 부유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는지까지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최대의 악역으로 꼽히는 안도훈(배수빈) 조차도 왜 그가 그런 배신을 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인지 용서는 할 수 없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개천용으로 살아가야 하는 발목엔 주렁주렁 모래주머니가 달려있습니다. 그가 재벌 상속녀 신세연(이다희)를 동경하고 사랑하게 되는 이유도 그것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에서 시작 되지요.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싶었기 때문에 손이 더렵혀진 순간, 누구보다도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향해 위험하게 달리는 그를 보면, 왠지 그의 파멸을 보더라도 고소하거나 통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세연 역시 비뚤어진 애정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에 가지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져지지 않는 것에 대해 더욱 집착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빈틈 없이 냉정하고 이성적인 그녀와 그녀가 속해있는 세상의 사람들 속에서 어쩌면 갑갑했을 그녀. 같은 세상의 사람이지만 조금은 특별한, 조민혁(지성)의 자유분방함 역시 그녀에게는 동경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맹목적인 그의 사랑 방식을 보면서 그 사랑을 내가 받고 싶다는 욕심도 들었겠지요.  

조민혁. 어머니에 대한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는 전형적인 애정 결핍자입니다. 그의 행동은 때론 유치하고 유아적이기까지 하지요.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밉상은 아닙니다. 분명 그에게는 '심장'이 있었으니까요. 뺑소니로 연인을 죽인 범인에 대한 원망은 사실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경이 되기 전에 지켜주지 못했던 건 분명하니까요. 그래서 더욱, 세상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그가 맹목적인 사랑을 베푸는 강유정에게 끌리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보통 사각 관계를 그려낼 때 어려운 것이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감정에 대한 설득인데, 이 네 남녀가 왜 이렇게까지 흘러왔는지가 공감이 가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됩니다. 내 여자와 아이를 죽게 만든 여자에게 복수를 하려다가 오히려 그 여자에게 빠져들어 버리게 되는 사랑.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할까 싶겠지만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거든요. 

이 드라마에 소설 '폭풍의 언덕' 이야기가 나옵니다. 약혼녀 신세연이 사랑에서 시작된 복수가 어떤 결말을 맺는지 보라고 조민혁에게 내밀지요. 그렇지만 조민혁은 묻습니다. 복수에서 시작된 사랑의 결말은 어떨 것 같냐고요. 총 16부작으로 다음주 방송만을 남겨두고 있는 드라마 비밀이지만 어떤 결말을 맺을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으로는 이 커플을 응원하고 싶지만.. 과연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