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고기와 순대를 파는 시장 이모 이야기 잡담

"이모! 오랜만이에요!"

"어어~ 그래, 어여와. 오랜만이네!"

시장 이모는 늘 웃으며 반겨줍니다. 오히려 친 이모들 보다 자주 보게 되는 시장 이모. 그래봤자 두세달에 한번 갈까 말까한 날라리 단골이지만,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지요. 몇번이나 갔다고 나를 기억할까, 정말 기억해서 반갑게 맞아주는 건가 싶은 생각에 살짝 고개를 갸우뚱 하는데 "왜 늘 같이 오던 친구 하나는 안왔어?"라는 이모의 한 마디. 잠깐의 의심조차 부끄러워집니다.

시장의 수많은 가게들 중에서 특별히 이곳을 찾게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인가 봅니다. 퉁퉁하니 여느 평범한 시장 포차 아줌마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웃는 모습이 정겨운 이모. 단골도 잘 알아봐주고, 인심도 후하고, 음식도 맛있으니 다른 곳을 가게 되지가 않지요. 

금요일 저녁 늦은 시간. 여전히 시장 한 켠의 포장마차는 북새통입니다. 8,9명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금새 꽉 차지요. 한쪽 구석에는 이미 어디선가 거나하게 취해 온 단골 할아버지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주 한병에 오뎅 하나, 고작 6천원어치를 주문해 놓고 주정 섞인 사연을 나누고 있습니다. 뒤늦게 발걸음한 단골들이 자리가 없어 되돌아갈 때마다 이모는 안타까워 하며 그 할아버지들을 쓱- 쳐다보지만 취할대로 취한 그 분들은 남의 시선은 아랑곳 없이 이야기에 심취해있습니다. 손님이 보기에도 답답한 상황, 그런데 이모는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되었을까. 몇 팀의 단골이 발걸음을 돌린 후에야 할아버지들은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이모는 한마디 덧붙입니다. "아이구, 평소에는 술도 하나 안드시던 분이 무슨 일이 있어 저리 취하셨대~" 자리에 오래 앉아 있던 할아버지들에 대한 원망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술 한방울 입에 안대던 분이거든. 그런데 희안도 하지. 무슨 일이 있나봐. 별일이네.." 우리에게 애써 변명처럼 설명을 늘어놓는 이모. 잠시라도 속상했던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이해하며 승화시키는 게 아닐까.  

한쪽 구석에는 젊은 커플이 옆 가게에서 싸온 빈대떡과 함께 순대를 주문해 먹고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생각해보면 다른 가게의 음식을 싸들고 오는 것은 식당 주인이 싫어하는 행동 중 하나겠지요? 하지만 이모는 우리에게도 "전 먹고 싶으면 가서 사와서 먹어"하고 권합니다. 이모가 전은 해줄 수 없으니 갖다가 먹으라는 거에요. 시장 인심이라는 것이 이래서 좋습니다.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순대를 사서 전집에 가서 먹거나 전을 사서 순대집에서 먹곤 하나 봅니다. 이따금 시장에 오면 별 것도 아닌 것에 괜시리 마음이 훈훈하니 녹아듭니다.

옆 테이블을 흘깃 보니, 병에 든 막걸리가 아니라 주전자에 막걸리를 담아 먹고 있네요. "저건 뭘까" 우리끼리 소근거렸더니 이모가 그냥 한공기씩 따라줍니다. 놀라울 만큼 맛있는 인삼 막걸리입니다. "한 주전자에 7천원! 단골은 5천원!" 그래서 한 주전자 달라고 하니 이모는 도리어 만류합니다. 다 못먹을 거라고, 반 주전자만 먹으라고. 

"뭐, 모자라지 않아?" 더 주문해서 시켜먹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모는 앞에 놓여있던 닭발과 껍데기를 집어 우리 접시에 놓아주며 묻습니다. "떡볶이는 안먹고 싶어?" 이미 배가 부른 우리는 이모의 호의가 미안해집니다.

그렇게 시장의 밤은 깊어가고, 어느덧 테이블에는 우리만 남았습니다. 늘 이 맘때쯤이면 한 초로의 노인이 어물쩍 등장합니다. 이모에게 뭔가 버릴 것을 받아다 치우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다지 많은 대화도 없습니다. 매번 그렇게 정리할 때 나타나 이모를 기다리는 걸 보면 남편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입니다.

이모는 포장마차를 정리하고, 우리도 거의 다 먹어 일어나려 할 때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시 그분이 나타납니다. 말없이 이모에게 커피를 내미는 노인. "아이구~ 뭘 이런 걸 사왔어" 이모는 커피를 받아들면서도 손사래를 칩니다. "왜요? 따뜻한 커피 좋잖아요~" 우리가 한마디 거들자 이모는 3천원짜리 떡볶이를 팔아 장사를 하면서 커피가 가당키나 하냐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리곤 노인에게 "저 대파 우리껀데, 좀 다듬어요."라며 남은 일을 시키지요. 노인은 대답 한 마디 없이 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보았습니다. 이모가 커피를 마시며 잠시 훈훈한 온기를 느끼는 것을. 아마도 노인은 하루종일 순대며 머릿고기를 파느라 고생하는 아내가 안쓰럽고 미안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다정한 말 한마디 못 건네는 사이가 되어버린 데면데면한 몇십년차 부부. 그저 커피 한 잔으로 그 마음을 전하고 싶지 않았을까.. 

한겨울의 추위에도 시장은, 열선이 깔려 뜨끈한 의자들 마냥 그렇게 훈훈했습니다. 

"이모, 또 올게요~!" 


덧글

  • Megane 2014/01/30 00:11 #

    으어~ 이거야말로 위장테러를...ㅠㅠ
    그러고보니 정말 제가 좋아하는 것들 뿐...
  • 2014/02/04 16:3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2/04 17:0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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