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선택으로 정해진 현재의 나 '미스터 노바디' 조조할인

뭐라 말할 수 없는 희안한 영화입니다. 혹자는 속된 표현으로 '약 먹고 만든 영화'가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일단 이 영화의 줄거리 파악만을 위해서도 1번 이상은 봐야 할 것 같아요. 인셉션이나 메멘토 같은 영화를 봤을 때처럼 얽히고 설킨 느낌이라서요. 그러면서도 SF 장면들은 묘하고 몽환적이기도 하고, 어떤 장면들은 트루먼 쇼를 연상시키기도 하고요. 여튼 어디서부터 뭐라고 리뷰를 남겨야 할지 엄두도 잘 나지 않는 영화 '미스터 노바디'입니다.

** 스포일러 꽤 많습니다만 영화를 보시는데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슬라이딩 도어즈' 같이 선택에 관한 영화는 그동안도 있어 왔습니다. 하다 못해 한때 유행했던 예능 프로 '인생극장'도 코믹하기는 했지만 한 순간의 선택이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결국 복잡하게 꼬여있지만 이 영화도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겁니다.

이 영화는 재미있는 발상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에 미래를 다 알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천사에 의해 그 능력을 상실하게 되지요. 하지만 천사는 니모 노바디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9살의 니모 노바디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모든 건 되돌릴 수 없어요. 그래서 선택이 어려운 거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니까요.
선택을 하지 않으면? 모두 가능성으로 남게 되죠."

2092년, 118살의 니모는 인류 최후의 '자연노화 사망 예정자'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인생에 관심을 갖지만, 그는 자신의 과거는 물론 나이조차 혼동하지요. 어느 날 그의 병실로 잠입한 기자가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풀어놓는 과거는 제각기 다른 9가지 버전이지요.  

그가 살아온 인생은 9살, 한 동네에 살고 있던 예쁘장한 세 소녀와 관련이 있습니다. 진, 앨리스, 안나. 니모는 안나를 짝사랑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안나의 아버지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 때문에 부모님은 이혼을 하게 되고, 그것이 노바디의 인생을 가르게 되는 첫번째 선택이지요.

엄마를 따라갈래, 아빠를 따라갈래?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던 니모는 열차를 타고 떠나는 엄마의 손을 간신히 잡아 열차에 올라탑니다. 또 다른 노바디는 열차를 쫓다가 아빠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엄마의 손을 잡지 못하지요. 그렇게 파생된 인생의 버전은 갈래갈래 나뉩니다.

1. 엄마를 쫓아간 니모 - 같은 교실에서 안나와 재회합니다. 안나가 말을 걸었을 때 퉁명스럽게 그녀를 내쫓죠. 그리고 34살, 한 역에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안나와 마주칩니다. 그것은 그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대사를 바꾸기로 합니다.

2. 엄마를 쫓아간 니모 - 안나와 친해진 니모 - 안나와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불운하게도 엄마는 안나의 아빠와 재혼을 합니다. 부모 몰래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두 사람은 결국 들키게 되고, 안나는 아빠와 함께 먼 곳으로 떠나게 되지요. 하지만 34살, 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 그러나 안나의 연락처가 빗물에 번지면서 니모의 또다시 안나를 잃습니다. 

3. 엄마를 쫓아간 니모 - 만일 안나를 다시 잃지 않았다면? 둘이 만나기로 한 등대에서 하염없이 안나를 기다리던 니모, 결국 안나를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만끽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로 차량이 물에 빠지고 그렇게 니모는 죽습니다.

그럼 아빠를 쫓아간 니모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4. 아빠를 쫓아간 니모 - 치매에 걸린 아빠를 간병하며 소설을 쓰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던 니모. 우연히 파티에서 앨리스를 만나 좋아하게 되고, 고백을 하러 가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보고 돌아서서 과속하다가 전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아, 좀 더 용감했다면...? 

5. 아빠를 쫓아간 니모 - 흔들리는 앨리스를 붙잡아 사랑을 쟁취한 니모, 하지만 신혼 여행에 가는 길에 불의의 사고로 앨리스는 죽고 니모는 앨리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화성으로 여행을 갑니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지만.. 

6. 아빠를 쫓아간 니모 - 만일 앨리스가 죽지 않았다면 행복해졌을까? 앨리스는 심한 우울증으로 아이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앨리스를 위해 차까지 불태웠지만 결국 그녀는 떠나고 말죠. 앨리스가 니모를 거절했다면 어땠을까..

7. 아빠를 쫓아간 니모 - 앨리스가 니모를 거절하자, 그에 분노를 느낀 니모는 보란듯이 진과 결혼을 합니다. 수영장 딸린 집에서 성공한 삶을 사는 듯한 니모. 그러나 진과의 결혼 생활은 무미건조하기만 했죠.

8. 아빠를 쫓아간 니모 - 진과 결혼해 수영장 수리공으로 살던 그. 인생을 될대로 대라는 식으로 선택해 살다보니 총에 맞아 죽고, 그런 그를 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가능성을 본 후, 니모가 선택하는 9번째 인생이 있습니다.

사실, 이 아홉가지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을 제가 제대로 파악한건지 아닌지조차 모르겠어요. 이런 인생 저런 인생이 마구 뒤섞여 있어서.. 정말 한번 보고는 줄거리조차 감을 잡기 어려운 영화.

그래서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뭐냐고요? 정작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 '현재'라는 것인지, 혹은 내가 살아있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내가 살아온 것의 증명은 내 과거에 대한 기억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내 기억속에서는 존재하지만 현실이 아니었던 과거, 내가 만들어낸 기억들이 점점 더 많아지지요. 같은 공간과 시간을 나누어 온 친구나 연인이 내 기억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죠.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매 순간의 선택이지만, 더불어 지금의 나는 내가 만들어 온 기억들을 쌓아올린 모래성일지도 모릅니다. 극단적으로 봤을 때 치매라는 병에 걸리면 최근의 기억부터 서서히 사라진다고 합니다. 기억이 사라진 나는 나일 수 있는 건가요? 

다양한 철학적인 의문과, 과학적인 질문과, 삶.. 인생에 대한 것을 곱씹게 하는 영화. 최소 2번 이상은 관람해야 할 것 같은 '미스터 노바디'였습니다.


덧글

  • 2014/04/12 08: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4/13 09: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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