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신 다음 날 아무 기억이 없다면 '타이밍' 잡담

필름이 끊기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술을 마신 후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현상을 블랙 아웃이라고 합니다. 알콜로 인한 선행성 기억상실로 뇌에 알콜이 작용하면서부터 발생한 일이 뇌의 기억세포에 저장이 안되는 현상이라고 해요. 대부분의 경우 소소한 사건사고로 끝나지만, 사람에 따라 대형 사건을 저지르는 일도 있습니다. 특히 범죄를 저지르고 '기억이 안난다'라고 해버리는 경우도 있죠. 아무리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술을 마신 건 본인이고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는게 아닐까요?

연극 '타이밍'은 그 블랙 아웃을 이후, 사태를 수습하는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어찌보면 헐리웃 영화 중 '행오버'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죠. 타이밍은 대학로 '예술극장 나무와 물'에서 현재 상영 중입니다.

예전에도 한번 가 본 적이 있는 소극장입니다. 마로니에 공원쪽이 아닌 로터리 방향에 있어요. 극장 근처에서 연극 전에 간단히 먹을 만한 곳은 롯데리아, 파리바게뜨, 투썸, 김밥집 등이 있더라고요. 횡단보도만 건너면 뭐가 많긴 합니다만.. 좌석은 소극장인 걸 감안하셔야 할 거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세 친구.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강건(한창완), 피규어와 아이언맨 등에 푹 빠져있는 정민(김재익), 정체 불명의 비호감남 오호(권오경). 철이 없는 걸로 따지면 누구하나 지지 않는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약 20여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민은 큰 기업의 회장의 생명을 구한 보상으로 회장의 딸 미경(남고은)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정민을 전혀 돌아봐 주지 않는 미경의 눈치만 보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죠. 미경이 잠시 외출한 사이, 갑작스레 쳐들어온 강건과 오호. 정민의 생일을 축하해 준답시고 먹은 술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불러 옵니다.

강건과 오호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정민의 행방은 간 곳이 없습니다. 벽장에는 왠 사내가 꽁꽁 묶여있고, 화장실에서는 경비 아저씨의 시체가 발견 됩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여자가 소파에서 잠들어 있죠. 그들은 대체 밤새 어떤 일을 벌였던 걸까요? 미경이 돌아오기 전까지, 이 집을 원상 복귀 시킬 수 있을까요?

보는 내내 많이 웃을 수 있는 연극입니다. 블랙 아웃 이후 사건을 되짚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긴 하고요. 그렇지만 벌려 놓은 갈등들이 너무 쉽고 빠르게 봉합되어 버려 약간 아쉬운 느낌이 있지요. 곱씹어 두고두고 생각해볼 만한 연극은 아니고, 영화 '행오버'처럼 그냥 생각없이 웃으면서 편하게 보는 코미디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랜만에 앞줄에서 연극을 봐서인지 몰라도 배우들의 땀이 너무 생생했어요. 단 4명의 배우가 다역을 하면서 극을 이끌어 가는데, 온몸이 흠뻑 땀으로 젖었더라고요. 이 극장, 이 스토리가 까맣게 잊혀지더라도 땀에 흠뻑 젖은 배우들의 모습이 왠지 더 오래 기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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