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가족도 가족이다?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 조조할인

한발자국만 떨어져 바라봐도 무난하고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연 없는 집은 없다. 부부간의 문제가 있고,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있고, 형제 자매간의 신경전이 있고, 또 그들의 배우자와의 문제가 있다. 정도만 다를 뿐, 세상 천지에 문제 없는 가족은 없다. 

어린 나이에 가족간의 갈등을 겪을 때는 "왜 우리집은 이럴까, 왜 나만 힘들까"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자라 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우리집은 상당히 평범하고 무난하고 그나마도 행복한 편이었다. 이혼하네 마네 하는 부모도 없고, 연을 끊네 마네 하는 자식도 없고, 부모의 재산을 놓고 갈등하는 형제자매도 없고, 각자의 배우자들도 무난하게 찾아가는 편이니.. 

그것이 어떤 가족이라도, 한 가족의 내부를 적나라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 가족 이외에 다른 가족의 속사정을 들여다 볼 일은 배우자의 가족 정도일 것이다. 만일 결혼을 하면서 새로 알게 되는 배우자의 가족이 무난하고 평범하다면 정말 큰 행운이겠지만, 대개는 우리 가족과 사뭇 다른 형태의 맨얼굴 앞에서 당황하기 마련이다.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August: Osage County)'은 간접적으로나마 어떤 한 가족의 맨얼굴을 보게 되는 영화다. 누군가의 쌩얼(?), 그것도 일그러짐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는 일은 그리 편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내 가족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그리 크지 않다고 위안받게 될 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 가족은 엉망진창이다. 

가출했다가 자살한 아버지의 장례식. 간만에 온 가족이 모인다. 엄마(메릴 스트립)와 그녀의 여동생 가족, 그리고 그녀의 세 딸의 가족들이 모두 한 식탁에 모였다. 얼핏 식탁의 모임만 보면 몹시 화목해보이지만, 각자 숨겨두고 있는 사정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약물 중독인 엄마는 독설을 퍼붓는다. 정말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지긋지긋한 엄마. 그녀와 유일하게 맞서는 사람은 별거 중인 첫째딸 바바라(줄리아 로버츠). 어떻게 보면 엄마와 가장 닮은 성격이기도 하다. 14살짜리 그녀의 딸도 뭔가 좀 비딱하다. 그 아이 역시도 엄마를 증오하지만, 얼핏 엄마의 모습이 나오는 것도 같다.  

둘째딸 아이비는 이종사촌인 찰스(베네딕트 컴버베치)와 몰래 연애 중이다. 찰스는 약간 모자란 아이지만, 그에게 애틋함을 느끼는 아이비.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부모들의 과오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다.

셋째딸 카렌은 10살 연상의 바람둥이와 결혼을 약속한 상태. 이미 여러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그는 고작 14살짜리 아이마저 마약을 미끼로 꼬시려는 최악의 남자지만, 카렌은 그것조차 개의치 않는다.

홀로 남은 엄마에게 딸들이 느끼는 애틋함을 애써 증오로 만드는 엄마. 증오하면서도 사랑하고, 연민하면서 더 실망하는 가족 간의 관계가 이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국 이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처절히 부수어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그 누구도 승자는 없다. 모두가 상처투성이인 채로, 그리고 모두가 혼자인 채로 그렇게 남겨진다. 그럼에도 왠지 어떤 날, 어떤 계기가 있다면 이 가족은 또 식탁에 둘러앉게 되지 않을까. 서로에 대한 증오도, 아무리 깊은 절망도, 가족이라는 '그저 피를 나눴을 뿐'인 관계를 쉬이 끊어내기란 어려운 법이다.  

출연진이 꽤 화려하다. 특히 셜록홈즈로 주목받는 배우로 떠오른 베네딕트 컴버베치, 셜록과 정반대의 어리숙한 연기도 인상적이었고. 또 나도 모르게 평가 절하했었던 줄리아 로버츠의 새로운 얼굴을 보게 된 느낌도 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메릴 스트립이 압권이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 건 알았지만, 애증의 대상인 엄마를 연기하는 그녀의 내공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된다. 이해가 되다가도 기가 막히다가도 지긋지긋하다가도 그녀가 왜 저렇게 됐는지 알것도 같게 만드는..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과 쌍벽을 이루는 대단한 연기였다는 생각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연극이 원작으로 그만큼 대사량이 많은 영화이다. 대사 많은 영화 기피자들은 피하길 권한다. 또 우울한 소재 기피자들도 피해야 한다. 따뜻한 가족애를 그린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이 가족이 보여주는 맨얼굴에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듯. 가족애에 대한 시니컬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면 재미있게 볼지도..


덧글

  • 백범 2014/05/30 18:10 #

    그런 관계를 끊어버리면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계속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속터지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는 "그런 가족"들에게 의존하는 경우입니다. 정서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그런 가족에게 의존하는 케이스인데... 이게 최악입니다. 계속 상처나 받으면서 미련하게 노예처럼 사는 것이지요. "그런 가족"이 죽거나 or 본인이 먼저 죽을 때까지 계속 그런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도 최악이고. ㅋ

    왕이면 저런 막장가족들과는 관계를 끊는게 본인의 정신건강에 유익하겠지요.

    그리고, 친구야 당연한거고, 가족이라고 해도 끊어버리거나 내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한사람의 자유인, 어느것에 구속받지도 않고 발목잡히지도 않은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저런 or 저 비슷한 정도의 문제의 가족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저런 가족에게서 골수와 영혼까지 빨리느니, 하루라도 빨리 자유인이 되는게 나을 듯...
  • 백범 2014/05/30 18:10 #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나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면 관계를 끊어버리는게 최선입니다.

    아직은 유교와 기독교가 지배하는 한국의 정서상 대놓고 관계를 끊겠다고 했다가 잘못하면 매장까지 당할수도 있는바, 고시원이나 원룸 얻어서 나가서 생활하는게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인 듯... 되도록이면 안정된 직장 갖고 어디 멀리 가서 사는것도 좋은 방법이고.

    다행히도 가족간의 유대관계가 약화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점차 증가한다 하니, 아직은 어렵겠지만 몇년 지나면 가족같지도 않은 가족에 대해 결별, 관계 끊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늘어나게 될 듯...

    가족도 남입니다. 내가 아니면 일단 다른 사람, 즉 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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