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길? 여행자에게는 공포의 길! 그리고 요지야 카페 바다 갈증

길은 그냥 길일 뿐이다. 원래 있었던 길에 올레길이니, 둘레길이니 이름을 붙여놓고 나니 특별해지는 것 뿐. 은각사에 있는 '철학의 길'도 그 이름 때문에 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철학의 길(哲学の道 / 데쓰가쿠노미치)은 은각사에서 난젠지까지 약 1.8 킬로미터간 이어지는 길이다. 작은 개천 옆으로 늘어선 작은 가게들과 카페, 꽃나무들이 있어 산책하기 좋아 일본의 길 100선에도 선정되었다고 한다. 20세기 초 일본에 최초로 서양 철학을 들여온 교토대 철학과 교수 니시다 키타로가 즐겨 걷던 길이어서 철학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까지 설명을 듣고 나면 왠지 가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지 않는가. 때문에 은각사 관람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철학의 길로 접어든 것이 큰 실수였다.

은각사를 찾으면 철학의 길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특히 한글로도 간판이 쓰여있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향하게 된다.

철학의 길 중간중간의 한글 표지판은 친절하게 강변을 따라 가라고 설명까지 곁들여 있다.

은각사에서 출발하는 철학의 길은 왼쪽으로 조그마한 천변을 끼고 걷는 길이 형성되어 있다. 천변을 따라 벚꽃 나무가 즐비한데, 이것이 벚꽃 시즌에는 손에 꼽히는 방문지로 돌변하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벚꽃 시즌을 제외한다면, 이 길의 매력은 제한적이다.

만일 교토에 거주하거나 장기 체류를 한다면, 하루쯤 와서 천천히 한나절 산책을 하기에 좋다. 혹은 데이트 코스로 철학의 길을 걷다가 아기자기한 카페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역시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2박 3일 일정으로 가뜩이나 걸을 일이 많은 빡센(!) 코스의 여행자라면 절대 들르지 말아야 할 곳이 철학의 길이 아닐까..

앞치마를 두른 돌은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는 의미라는 말이 들어 왠지 숙연해졌던..

철학의 길에는 의자들이 꽤 많아 쉬었다가 갈 수는 있다.

아직 다 지지 않은 봄꽃이 간간히 남아 그나마 벚꽃을 못보는 아쉬움을 달래준다.

천변 오른편으로는 아기자기한 가게나 카페들이 있어 아이쇼핑을 좋아한다면 천천히 구경을 하면서 걷기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쇼핑도 잘 하지 않고, 이미 한나절 관광으로 파김치가 된 나에게는 이 길은 공포스러웠다. 왜냐면 가도가도 끝이 없었기 때문. 벚꽃 조차 흔적없는 계속 똑같은 뷰의 길을 산책 용도가 아닌 상태로, 그것도 혼자 걷는 건 상당히 지루한 일이다. 어느 정도 걷다보면 오른편으로 빠질 수 있는 큰 길이 나오겠지 싶었는데, 긴가민가 애매한 골목길만 보이고.. 지리도 잘 모르니 대체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불안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되돌아가기에도 너무 많이 와 버린 기분이고..

뭔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표지판이 등장한다.

와아, 내가 지금 어디있지?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서 본 표지판에는..

그렇게 걸었는데도 철학의 길을 반도 걷지 못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철학의 길 전체 길이가 1.8키로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었던 오판이었다. 아무래도 철학의 길 끝까지 가선 안되겠고, 중간 어디쯤 빠져야 할텐데.. 중간 어디쯤에서 골목을 빠져나가야 제대로 버스를 탈 수 있는지 초행길이라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표지판을 확인하고 조금 더 걷다보니 요지야 카페가 눈앞에 나타난다. 교토에서 시작한 브랜드 요지야는 각종 화장품이나 메이크업에 필요한 화장 도구들도 파는 아주 유명한 가게라고 한다. 요지야는 카페도 있는데, 카페에서는 요지야 얼굴 모양이 떠 있는 녹차 라떼가 유명하다고 한다. 요지야 카페는 여러 지점이 있는데, 그 중 철학의 길에 있는 요지야 카페가 제일 예쁘다는 블로그를 얼핏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 요지야 카페 근처에서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사실.  

지친김에 요지야 카페를 들를까 싶기도 했지만, 차한잔을 마실 마음의 여유도 없이 지친 상태라 패스! 철학의 길, 내 너를 결코 잊지 않으리...!

철학의 길을 걷다가 요지야 카페를 발견하면 그 우측으로 차로로 향하는 완만한 내리막길이 있다. 그 끝에는 패밀리 마트가 보이니 그리 찾기 어렵지는 않을 듯. bistrot minette라는 식당을 좌측으로 끼고 돌아가면 버스 정류장 방향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오른쪽 위의 초록색 화살표인 은각사에서 부터 철학의 길을 따라서 B표시의 요지야 카페에 도착, 거기서 오른쪽으로 길 따라 내려간 후 다시 왼편으로 조금 내려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물론 이 코스는.. 여유가 있는 분에게 추천하는 코스이고, 벚꽃철이 아니면 굳이 철학의 길을 걸을 이유가 있을까 싶다. 특히 단기 여행객에게는.. 지도상으로 보면 중간에 서너번 정도 버스 차로길로 빠질 수 있는 골목이 있다. 그 중간에 버스 정류장이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데..

핑크색 점 정류장의 이름은 킨린샤코마에(kinrin shako-mae). 이곳에서 100번 버스를 타면 교토 관광의 하이라이트라는 청수사(기요미즈데라)로 갈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가장 예쁘다는 요지야 카페를 가고 싶으면 굳이 은각사가 아닌 킨린샤코마에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왼쪽 위의 핑크색 점이 은각사(긴카쿠지), 철학의 길에서 내려와 버스를 탄 정류장이 그 아래 빨간 점인 킨린샤코마에(錦林車庫前), 거기서 버스를 타고 아래쪽 빨간 점 키요미즈미치(淸水道) 역에 정차를 하면 다시 핑크색 점인 청수사(기요미즈데라)에 갈 수 있다. 물론 철학의 길을 걷지 않고 은각사의 버스 정류장인 긴카쿠지 미치에서 버스를 탑승해도 된다.

후우. 가뜩이나 여러 절을 구경하느라 많이 걸은 날이었는데, 엄하게 철학의 길을 걷는 바람에 많이 걸으면 허리가 후들후들 아프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역시 교토는 최소 3박 4일 일정은 되었어야 했다... 크흡!  


덧글

  • Megane 2014/06/02 18:45 #

    1.8킬로미터... 제대로 낚이셨네요... 묵념...
    저는 우이동 산길 개통되었다고 갔다가 지쳐서 뻗은 기억이...
    뭐 김신조씨가 왔건 말건 빨리 집에 가고 싶기만 했던...ㅠㅠ
  • 미친공주 2014/06/02 19:07 #

    ㅜㅜ...
  • 임윤 2014/06/02 20:13 #

    -ㅁ-)!; 전 꽤 (두 번이나 풀코스로) 잘 걸었는데요!! 12월인가에 걸으면서 꽃이 피어있어서 여긴 완전 천국이다!! 이랬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꽤 젊었던 시절이군요 늙은 지금 가라면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 미친공주 2014/06/03 09:39 #

    다른 관광 안하고 여유롭게 산책하면 괜찮을것 같아요. ㅠㅠ
  • 멋부리는 눈토끼 2014/06/02 20:24 #

    저는 2월 눈오는 와중에 교토를 갔었는데 이 길 예쁘던데요?

    물론 은각사 갔다가 근처에 유명한 우동집있대서 한참 헤매긴 했지만....
  • 미친공주 2014/06/03 09:40 #

    우동집 찾는건 오히려 쉬웠어요 ㅋㅋ 눈길도 괜춘할것 같네요
  • shaind 2014/06/02 20:26 #

    솔직히 전 좋았지만, 급한 일정에서라면 제일 먼저 뺄만한 곳이 철학의 길이죠.
  • 미친공주 2014/06/03 09:40 #

    ㅠㅠ 그걸 몰랐다는..
  • 2014/06/03 15:5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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