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뒷통수를 가장 세게 후려친 드라마 '개과천선' TV이야기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의외로 많다. 사극을 보면서 역사에서 현재를 배우고, 연애를 배우고(혹은 연애감정을 되살리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에서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도 있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깨닫는 건 막장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막장이라는 점이다.

여튼 각설하고, 올해 내 마음을 가장 두근거리게 했던 드라마가 '마녀의 연애'라면 내 뒷통수를 가장 세게 후려친 드라마가 '개과천선'이다. 그 분야에서 '정도전'도 꽤 선전했지만, 개과천선만큼은 아니었다고 본다. 정도전이 현실 정치를 은유적으로 보여줬다면 개과천선은 법피아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준 최고의 드라마였다.

처음에는 '개과천선'이 몇차례 등장했던 법정 드라마의 맥을 이어가는 드라마인줄 알았다. 법정에서 연애하는 얘기겠거니.. 싶었는데, 줄거리가 냉철한 변호사가 머리를 다쳐서 개과천선 하는 내용이란다. 그래서 나쁜 놈이 기억상실로 착한 놈이 되는 얘기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다보니 '... 하겠거니' 했던 예상은 죄다 빗나가고 매회 몰입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그러나 이해하고 싶어 죽겠는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뒤통수를 여러차례 맞으며 제대로 공부한 느낌이다. 나 역시도 우리 사회 계급 중에서서 다수에 포함되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주인공이 읖조리는 "세상에는 왜이렇게 순진한 사람들이 많은거야"라는 대사에 왠지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빽이 없고 지식이 없고 능력이 없다면 그저 순진하게 살아하야 하는, 그래서 억울한 일 안당하고 살면 운이 좋은 것이 현실인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김석주(김명민)은 차영우 로펌의 최고 변호사다. 그가 도맡아 하는 것은 기업들의 소송 대변. 단순히 소송에 걸린 기업들의 입장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법을 악용해 최대의 이익을 뽑아낼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주고, 그만큼의 어마어마한 수임료를 받는다. 그가 변호하는 것에는 옳고 그름의 가치란 없다. 그저 얼마만큼의 이익을 뽑아낼 수 있느냐가 목표가 된다.  

그런 그가 사고로 기억상실에 걸린다. 희안하게도 법적인 지식이나 수단은 그대로 기억하고, 가족, 로펌, 주변사람들에 대한 기억만 송두리째 날아갔다. 그래서 그가 개과천선 했냐고? 그렇다고 성격이 변해 착하고 무능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은 김석주 답지 않다. 그는 여전히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던 기계적인 에이스가 아니라 생각하고 움직이는 인간이 되었다. 오히려 로봇이 마법에 걸려 인간으로 바뀐 느낌이다.

그래서 그가 싸우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그가 저질러놓은 악행들을 수습하는 일이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내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고 그로 인해 피해입은 사람들을 변호하게 된다. 아이러니지만, 설득력있게 그려진다.

자신의 과오를 지워나가다보면 싸워야할 끝판왕은 차영우 대표로 대변이 되는 국내 최고의 로펌 차영우펌이다. 법조계의 인사권까지 쥐고 흔들만한 위력이 있는 차영우펌은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적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것이 드라마에서 과장된 법피아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실체라는 점이다. 이런 대형 로펌은 기업 혹은 상위 몇프로의 승소를 위해 법조계의 인사이동까지 시키며 이익을 창출하는게 우선이다. 아무리 억울하다해도 사회적 약자가 깨부술 수 없는 벽이다. 

그러나 그것을 탓할 수도 없다. 드라마에 이런 대사도 나온다. "내 자식 변호사, 판사, 검사 되라는 부모들이 뭐라고 하냐. 자식이 잘먹고 잘 살라고 그거 시키는 거지 억울한 사람을 위해 싸우라고 시키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그들이 정의를 위해 싸워줄 거라 생각하냐" 그말이 정답이다. 결국 내 자식 성공하라고 하는 건 잘먹고 잘살았으면 하는 바람인거지, 사회적 약자를 도우라고 성공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진정한 무서움은 드라마에서 다루는 이슈들에 있다.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태를 모르는 국민은 없지만, 그것이 어떻게 종결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어민들이 기름에 절은 물고기를 싸들고 와서 항의를 해도 정작 기름유출을 한 기업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장 적게 배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키코사태? 이름은 들어봤는데 뭔지 몰랐다. 동양증권 사태? 역시 들어는 봤지만 관심이 없었다. 내가 해당되지도 않는 일인데다 경제적 용어가 들어가는 순간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니 이해가 간다. 왜 이런 사태들이 생겨났는지. 기업들이 어떻게 이런 사태를 만들어냈는지. 그리고 왜 손해본 개인은 넘쳐나는데, 은행이나 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는 건지...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이 드라마를 통해 이해를 하고 나면 다시금 이 대사가 생각난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순진한 사람들이 많아!" 그것이 순진한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 드는 이유일 거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드라마도 벌써 종영을 바라보고 있다. 연장을 해도 부족할 드라마를 조기종영하면서 막을 내린단다. 법피아를 실컷 까발렸지만, 정작 드라마 판의 현실에 굴복하고 만다. 어떻게 종영이 될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개과천선이 내게 준 충격은 상당히 오래갈 것 같다.


덧글

  • Megane 2014/06/25 19:40 #

    크~ 김명민의 신들린 연기는 절대로 실망을 주지 않죠.
    저도 꼭 챙겨보는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언급하신 부분은 진짜 명대사같아요.
    순진해서 피해보고... 멍청해서 피해보고... 알면서도 피해보고... 어쩔 수 없이 눈 뜨고 피해보고...
    법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이야기는 오래 오래전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 속에 묻혀버린 지 오래고 말이죠...
    게다가 뻔한 전개가 아니라 주인공이 엄청나게 냉철해서 더 현실같고 무서운 드라마...
  • 미친공주 2014/06/26 10:22 #

    ㅠㅠ 아. 연장도 부족할판에 조기종영이라니... 후
  • Megane 2014/06/26 13:10 #

    오히려 깔끔하게 끝나는 게 좋아요. 그래야 다음번에도 김명민씨를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게 되니까요.
  • my private life 2014/06/27 01:08 #

    저도 꼭 챙겨보는 드라마인데, 여주인공(?) 역할이 흐지부지한 것과 러브라인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좀 아쉽긴 하더라구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그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드라마인 것 같습니다.
    미드처럼 이런 드라마들은 시즌 2,3 나왔으면 좋겠어요 ㅠ
  • 미친공주 2014/06/27 10:00 #

    하아.. 마지막회는 진짜.. 눙물이 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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