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을 보러 간다면 아마도 실망할 영화 '루시' 조조할인

1974년 미국-프랑스 합동 조사단이 에티오피아 하다르 유적지 일대를 조사하던 중 미국측 발굴 단장 도날드 요한슨이 많은 뼈 화석들을 발견했다. 이 뼈 화석들은 한 어른 개체의 거의 46%에 달하는 양이었고, 그는 이 뼈 화석을 '루시'라 명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인 루시는 약 90cm의 작은 키와 침팬지보다 더 가벼운 몸무게를 가지고 있는 여자 어른이었다. 

인류 최초의 여자 '루시'의 이름을 딴 이 영화는 액션 영화라기보다는 진화론적 보고서에 가깝다. 액션을 보러 가면 실망할, 그리고 '명량'으로 한껏 인지도가 오른 최민식을 보러 가면 더더욱 실망할 영화 '루시'.

** 스포일러 조금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뇌용량의 어느 정도를 사용하고 죽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 같다. 혹자는 1~2%도 못쓰고 죽는다고도 하고 혹자는 평균 사용량이 10%라고도 한다. 정확한 퍼센테이지는 알 수 없지만 천재라고 불리는 아인슈타인도 자기 뇌 용량의 20%도 채 쓰지 못했다고 하니 인간이 자신의 뇌를 충분히 쓰지 못하고 죽는다는 건 분명하다.

그럼 왜 인간은 뇌의 일부만 사용이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을까. 그럴거면 뇌의 용량 자체를 작게 만들어 충분히 사용해도 되지 않았을까. 만일 뇌의 용량을 100%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이런 호기심을 진화론적인 가설에 영화적 상상력을 덧붙여 만든 영화가 바로 '루시'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는 몇년 전에도 나왔었다. '리미트리스'라는 영화인데, 두 영화를 모두 본 사람들은 리미트리스가 재미적인 측면에서는 더 낫다고들 한다. 영화를 보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루시'는 '액션'과 '다큐'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는 영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리미트리스를 보지 않았고, 이 소재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노먼 박사(모건 프리먼)의 강연과 루시의 변화를 그려내는 장면들이 꽤 재미있었다. 반대로 미스터 장(최민식)과 얽히는 액션 씬들은 불필요한 거추장스러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들을 받았다.

한국인 배우가 한국어를 쓰는 헐리우드 영화라는 고무적인 성과(?)를 배재하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면, 중국에서 지극히 중국스러운 정서를 담은 화면에서 단지 언어만 한국어로 연기되어지는 장면들에 먼저 위화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영화의 내용상 악역은 불필요하고, 아니 있어도 존재감이 없을 수 밖에 없다. 마치 수퍼 히어로 앞에서 일반인들이 지극히 나약해보이는 것처럼, 상대 역시 수퍼 히어로나 우주인이 아닌 이상 그 한계가 너무나 빨리 느껴지는 것이다. 그에 따른 액션은 더더욱 약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애와 어른처럼 싸움이 되지 않는 싸움이니.

단 한 장면, 루시와 미스터 장의 만남에서 지극히 교과서적인 '통역'이 이루어지는 것. 그 장면이 오히려 재미있게 기억에 남는다. 여튼 미스터 장은 루시가 각성하는 계기를 주는 사람이지만, 끝까지 등장할만한 악역 끝판왕은 아니었다는 것. 명량의 여파인지, 명절 탓인지 '최민식'을 보러 온 어른들도 꽤 있었는데, 그분들이 이야기 하시는 걸 얼핏 들으니 영 재미없으셨던 모양.

최근에 영화 'Her'를 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비슷한 느낌의 주인공이다보니 루시에게서 받는 임팩트는 역시나 반감되는 듯 했다. 스칼렛 요한슨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차라리 액션적인 측면을 조금 덜어내고 루시의 진화를 더욱 집중 조명해 다큐에 더 가깝게 그려냈다면 보다 흥미로운 영화로 탄생하지 않았을까? 조연들이 그냥 입을 떡 벌리고 주인공의 원맨쇼를 마냥 지켜만 보게 만드는 것은 소재의 낭비같다는 생각. 여튼 이 영화로 인해 '리미트리스'를 찾아서 볼 것 같다. 같은 소재를 어떻게 그려내는지 궁금해서..

그렇다 해도 영 재미없는 영화라고 폄하하기에는 아깝다. 애매모호하게 표현되긴 했지만 영화에 담겨진 철학이나 생명, 인간성에 대한 메시지들은 결코 가볍지 않고, 루시가 각성해가는 부분들은 충분히 흥미롭다. '최민식'을 보러 간다거나 끝내주는 액션 영화를 감상할 목적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 가설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 '루시'다. 


덧글

  • TokaNG 2014/09/11 17:49 #

    예고편을 보고 액션도 기대됐지만 소재 자체가 워낙 구미가 당겨서 몇몇 리뷰를 본 지금도 여전히 기대중입니다.
    꽤 흥미로운 소재를 어떻게 표현했을지가 관건인 것 같아요.
    주말에 보러 갈 예정입니다.
  • 미친공주 2014/09/12 09:16 #

    훔.. 기대하지 마시지.. ㅋㅋㅋㅋ
  • ChristopherK 2014/09/11 22:04 #

    역시 뉴욕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사람이 甲이군요.
  • 미친공주 2014/09/12 09:17 #

    ㅋㅋ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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