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내 남편의 빈 자리란? '슬픈 연극' 잡담

소극장 치고는 좌석도 편하고 시설도 깔끔한 '아트원 씨어터'를 다시 찾을 일이 생겼다. 바로 '슬픈 연극'이라는 연극 때문이다. 지난번에 비슷한 느낌의 '사랑별곡'이라는 연극을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어 볼까 말까 고민했던 연극인데, 어쨌거나 비교를 해보기로 하고 연극을 관람했다.

제목부터가 '슬픈 연극'이니 작정하고 슬픈 내용이겠다 싶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내가 본 연극은 김중기 이지현씨가 연기하는 날이었다. 포스터에서 TV나 영화를 통해 많이 봤던 배우 강신일씨를 봐서 그 분의 연기를 보고 싶었는데. 김중기 이지현씨의 연기도 좋았다. 특히 이지현씨의 사랑스러움이 물씬 드러나는 연극이었다고나 할까.  

신기하게도 나이를 먹다 보니 남편 욕, 아내 욕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어릴 때 남편 욕을 들으면 그 놈 정말 나쁜 놈인건가 착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결혼한 부부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게 욕이 욕이 아니더란 말씀. 욕을 빙자한 칭찬을 하는 내공 높은 부부도 있고.. 설령 진짜 욕이더라도 그게 그 배우자의 전부는 아닌 것이었다. 욕을 하더라도 함께 살고 있다는 건, 그 불만을 상쇄할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남편 욕, 아내 욕이라는 것은 대부분 그 사람의 생활방식에 대한 불만이다. 그 이야기는 상대방을 속속들이 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헤어지지 않는 한, 배우자는 그 사람의 동반자다. 그래서 섣불리 동조를 하거나 둘 사이에 끼어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알게 되었다.

간혹 부부동반 모임을 경험하게 되면, 부부의 대화는 둘만이 아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서로 툭치는 행동 하나 살짝 내뱉은 말투 하나에서도 척하면 척인 경우가 많다. 남들 앞에서 서로를 막 챙기며 알콩달콩한 부부보다는 퉁퉁 거리는데 그 대화 속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끈끈함이 느껴지는 부부가 나는 왠지 더 보기가 좋다.   

이 부부의 만남부터 현재까지.. 각자의 독백으로 이야기를 듣게 되는 연극. 여느 부부처럼 만남이 있고, 과정이 있고, 삶이 있다. 척하면 척인 부부의 삶을 보여주면서 서로에 대한 불만 같이 안 들리는 불만들을 토로한다. 이제는 처음 만난 곳이 연대 독수리 다방인지 명동 다방인지도 가물거리는 사이.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이 관객의 미소를 끌어낸다. 물론 이 부부가 겪었던 일들은 4~60대 연배가 충분히 겪었을 법한 일들이다. 고생고생 하다가 이제야 자리를 잡고 안정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데 이 부부, 중년 부부치고는 사이가 너무 좋은 편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분명하다. 배우자가 떠날 것을 미리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일이 닥치지 않은 중년 부부였다면 이렇게 애틋한 마음도, 과거를 되짚어 끌어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 아내의, 내 남편의 빈 자리는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고작 몇 년 만난 남친의 이름도 자주 부르다 보면, 다른 친구를 부를 때도 그 이름이 튀어나올진대. 함께 살을 부대끼며 10년, 20년, 30년.. 길들여져버린 시간들. 그 시간들이 있기에 나도 모르게 내 곁에 없는 배우자의 이름을 문득 부르게 되지 않을까.   

생각만큼 눈물을 짜는 신파극은 아니다. 부부가 함께 보면 좋을만한 연극이다.

지난번 사랑별곡보다는... 좋았다.

PS: 아트원 씨어터를 이용하면서 부득이하게 차를 가지고 가게 되었다. 극장 바로 옆에 공터와 대각선 방향에 주차 타워가 있지만 우리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공공주차장을 이용하였다. 이 주차장의 장점은 대학로 문화시설(연극 등) 당일 티켓을 제시하면 30% 할인이 된다는 것. 마로니에 공원 근처의 극장을 이용할 때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