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당신의 인생을 한편의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럴 때 "아! 내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틱한 영화지, 암.."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 내 인생에 그렇게 대단한 사건 사고도 없었는데 영화로 만들 수가 있을까?"라는 고민이 앞서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흔히 평범한 사람들이 겪지 못하는 기막힌 사건이나 사연이 있어야 영화로 만들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영화로 만들어질 수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해서 그 인생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고민과 갈등으로 인한 힘겨움을 느끼며 살아왔다. 어마어마한 사건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기억들. 그것을 한고비 한고비 넘어서며 살아낸 지금의 '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한편의 역사가 아닐런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보이후드'라는 영화다.
***스포일러 조금 있습니다. 영화 감상하실 분은 피하세요!

서론에서 장황하게 이야기 했듯이, 이 영화 속에는 특별한 사건 사고가 벌어지지 않는다. 끽해야 주인공 메이슨(엘라 콜트레인) 엄마의 잦은 이혼과 재혼이 특별하다면 특별하달까. 그것도 우리나라 정서에서나 그렇지 미국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일일수도 있다. 꼭 무슨 사고가 일어날 것만 같다고 느껴지는 몇몇 장면들도 있지만, 그건 관객들이 기존의 영화를 봐오면서 길들여진 탓이다. 이쯤 되면 뭔가 나오겠지, 이쯤 되면 무슨 사건이 벌어지겠지 기대를 하게 되지만 정말 그렇다 할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지루하게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메이슨이라는 한 소년의 살아가는 과정만 쭉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생에서의 특별한 사건사고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일상 중 하루를 뽑아서 보여주는 느낌이다. 정작 엄마의 이혼이나 재혼 장면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고 짐작으로 알 뿐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약간 멍한 상태로 관람을 했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영화의 중반 이후가 넘어가자 점점 이 소년의 인생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잘 아는 친구네 집안 사정을 들여다보는 기분처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영화는 비포 시리즈를 만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다. 비보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시리즈는 같은 배우들을 9년씩 텀을 거쳐 촬영해 첫 만남부터 함께 늙어가는 중년까지를 보여준 독특한 시리즈였다. 이 영화 또한 그와 비슷한 형식을 띄고 있는데, 주인공 메이슨을 비롯해 누나, 엄마, 아빠 역할의 배우들과 장장 12년에 걸쳐 찍은 프로젝트다. 모든 배우들이 12년 동안 때가 되면 이 감독과 만나 촬영을 해왔을 걸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는 감탄만 나온다.
또한 실제 배우들이 성장하는 모습이다보니 성장기 사이의 위화감이 없이 감독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엘라 콜트레인이라는 한 소년이 아이에서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을 축약적이지만 가까이에서 실제로 목격한 셈이 되는 것이다. (아이가 어떻게 자랄 줄 알고.. 이렇게 뚝심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을까)
또한 선거나 스포츠 등 그 당시 가장 이슈였던 것들을 슬쩍슬쩍 담아내어 시간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느끼게 한다. 티비와 게임기에서 컴퓨터, 핸드폰으로 달라진 일상의 변화들까지도... 그것이 12년의 힘인 것 같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의 등장인물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이건 이 감독의 특징이기도 한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마치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격이나 인생관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영화가 아니라 그 모든 캐릭터들이 감독의 목소리를 나누어 전달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사나 대화가 많은 편이다. 그 대화 하나하나의 의미를 곱씹지 못한다면, 이 영화는 말 많은 정말 지루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대사 많은 영화 기피자, 긴 러닝 타임을 견딜 수 없는 사람,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황에 있는 사람 등은 접근 금지해야 할 영화. 비포 시리즈를 재밌게 본 사람들에게는 권할 수 있는 영화다.
ps: Hero - family of the year http://youtu.be/mHeK0Cwr9sg
이 노래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도 OST로 등장했는데, 이 영화 속에서 들으니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 들어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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